참견하기 좋아하는 사회 vs. 배려와 관심으로 가득찬 사회

추-
주저리 주저리 쓰다 보니 앞뒤가 안맞을 수도 있고.. 괜히 불쾌한 느낌이 들 수도 있을 법한 조금은 시니컬한 글입니다. 이 점 염두에 두시고. (__)

누군가로 부터 관심을 받는다는 것은 그자체만으로도 부담이 되는 일입니다. 애초에 관심을 끌기 위해 스스로가 노력해야 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긴 하지만, 지속적인 관심 때로는 지나친 관심이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경우도 허다하거든요. 물론 사람은 홀로 살아갈 수 없는 동물인지라 어느 사회에서든 종속될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다른 구성원들로 부터의 관심이 참견이 될련지 배려가 될련지는 당사자가 선을 어디에 긋느냐에 달린 것일까요, 아니면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을까요?

세상에게 외치다.

외부로부터의 최초의 관심 또는 입력을 받는 것은 본인에서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공개적인 장소에서든 개인적인 사석에서든 자신의 목소리가 닿는 순간부터 주위에서 ‘관심’을 갖기 시작합니다. 아프다면 건강에 대한 간호를, 고민이 있다면 해결을 위한 조언을, 그리고 그 외에 다른 모든 화제에 대해서 따스한 배려를 때로는 강압적인 충고와 조언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기쁨을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된다고, 어떻게 보면 참 좋은 상황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자신의 고민거리를 해결함과 동시에 타인의 관심을 한몸에 받는다는 따스함에 세상은 아직 ‘괜찮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기도 하니 말입니다.

이렇게 자신이 자초한 관심은 함부로 참견이라 부를 수 없겠네요. 아니 그럴까요?

그리고 자신의 외침이 항상 남에게 닿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죽어라, 목이 쉬어라 외쳐봐도 외톨이마냥 홀로 외로움을 달래야 하는 경우도 많아요. 정녕 인간은 자신이 참견하고 싶은 화제에 대해서만 관심과 배려를 쏟아 붓는 것일까요?

배려와 참견은 종이 한장차이

우선 스스로가 요구한 관심은 적어도 초기단계에서는 참견이라 부르기는 좀 애매모호합니다. 다만 실제로 참견 받는다고 생각하기는 너무나도 쉽습니다. 도를 넘어선 조언과 배려는 받아들이는 사람이 결정하는 것이지, 조언해준 사람이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자신의 의도가 어찌되었든 받아들이는 이가 거부한다면 그건 참견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이기적일 수 밖에 없는 인간인지라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경우도 많이 나올 겁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도 여전히 누가 옳고 그른지를 판가름하기 쉽지 않습니다. 인식/견해의 차이라는 게 참 무서운 것이거든요.

인터넷상에서의 참견꾼들

수많은 (뉴스)포탈사이트에 하루에도 수백, 수천개씩 달리는 댓글들은 관심일까요, 참견일까요? 자신의 삶과는 전혀 상관이 없을 법한 연예인 기사에도 수없이 달리는 것이 댓글이고, 지구상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기아현상이나 전쟁에 관련된 기사에 수없이 달리는 것도 댓글입니다. 이러다 보니, 자연스레 단순히 자신의 인생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없다로 배려와 참견을 나눌 수는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단순히 댓글의 내용만으로 기준을 삼기엔 조금 애매모호한 경우가 많죠. 생판 얼굴 한번 마주치지 않은 사람의 결혼을 축하하는 글은 절대 ‘악플’은 아니지만 아예 참견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지도 않습니까. 왜 사람들은 타인의 삶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일까요?

대리만족?

누군가를 칭찬한다는 것은 스스로도 흐뭇해지는 일 중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칭찬 받는데 싫어할 사람도 드물고, 남한테 (진심으로) 좋은 말 해주면서 이빨 가는 사람도 없지 않겠어요. 특히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관심을 가진다는 것 자체가 대부분의 경우 긍정적인 답변을 받을 수 있기에 서로 얼굴 붉히는 일도 없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물론 때로는 과감하게 악담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악담을 통해 무슨 만족을 얻을 수 있겠느냐 하시겠지만, 악플러의 경우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대들고 따지는 행위는 자신을 뒷받침하고 있는 또는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대변한다는 정의감에 그 나름대로의 만족감을 불러 일으키기도 하거든요.

내가 하면 배려, 남이 하면 참견

평소에 자신이 하는 행동의 얼마만큼이 참견이고 얼마만큼이 아니라고 생각하십니까? 감히 선을 긋기 힘든 대답이리라 생각되네요. 문득, 자신의 조언 또는 말 한마디가 상대방의 결정을 짓게 하는 주요인이 되길 바란다면 참견이고 그렇지 않다면 배려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2 Replies to “참견하기 좋아하는 사회 vs. 배려와 관심으로 가득찬 사회”

  1. 댓글을 통해서 아이디어가 교환되고 그래서 보지 못 했던 각도에서 새로운 해석을 풀어나갈 수 있다는 것에서 또한 댓글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해석은 사람 마다 다르겠죠. 🙂 좋은 밤 되시길.

    1. 🙂 댓글에서 긍정적인 의미도 많이 찾을 수 있다는 것에 공감합니다. 플톡에서처럼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에도 크게 도움이 되겠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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