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섭하길 좋아하지만, 간섭받길 싫어하는 인간

cynicism, 냉소주의 하면 저였는데, 바빠서 조용히 있었더니 뇌가 간지럽더군요. 평소에 했었던 자잘한 생각들을 한데 모아볼 요량으로 글을 시작해 봅니다.

사람 人 자라는 것이 각가지 해석이 가능한 거겠죠? 보통은 사람 두명이 기대어서 서있다고 해서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뭐 좋게 말하면 인간은 혼자서 살 수 없으니 함께 힘을 모아 지내야 한다는 건데, 정말 그런건지 재해석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긴 재해석이라, 말이 좋아 재해석이지 실제로는 그저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제 의견에 동의하시든 그렇지 아니하시든 뭐라 왈가왈부 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지요.

1+1 = ?

1+1=10 이지요. (웃음) 아실분은 아시겠지만, 각설하고 본론으로 넘어가면…

수학적인 질문을 하자는 것도 아니고, 철학적인 부분을 들추자는 것도 아닙니다. 지극히 결과론만 따져봤을 때는 말이죠, 일 더하기 일이 항상 이가 되는 것은 아닌 거 같더라구요. 아 물론 1+1=2 가 진리였던 시절도 있었을 겁니다. 바로 아주 먼 옛날 아라비아 상인들이 낙타교환하고 있을 때는 말입니다.

인간史에 있어서 1+1은 이제껏 2를 능가하는 결과를 보여왔습니다. 전장에서도 산업에서도, 뭉치면 단순 수학적인 계산을 넘어서는 현상을 보여줬어요. 덕분에 서기 2008년인 지금, 저는 오늘도 따뜻한 옷을 입고, 매초 수십 수백메가비트급의 정보가 왔다갔다 하는 인터넷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1+1이 단순히 2였다면 지금 현재상황에 이르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겠지요.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는 돌아가고 있습니다. 다만 문제는 더이상의 긍정적인 발전은 기대하기 힘들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어느샌가 1+1=0 을 향해 가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아니 0이면 되려 다행이게요. 마이너스, 음수가 될련지도 아니 이미 되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참 슬픈 부분인데, 사람이 모이면 모일 수록 좋은 일이 일어나기는 커녕 나쁜 일들만 그득하고 있거든요. c’est la vie. 사는 게 다 그렇지, 라고 삼키고 넘기기엔 이미 두 눈과 귀를 막는 것만으론 부족해졌어요.

기대고 사는 우리

대놓고 말합시다. 예, 이 세상 누구하나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 없습니다. 아마 있다면 저어기 외딴섬에 혼자 남겨진 현대판 크루소 정도겠지요. 의식주 중 어느 하나 자신이 자급자족할 수 있는 사람은 이제 없습니다. 정당한 대가를 지불했든, 날로 먹든 의지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가 없어요.

그래서 돕고 돕는 게 사회가 아니냐구요? 이 돕는다는 게 참 애매한 표현입니다. 제가 봤을 때는 ‘돕는 다는 것’은 더이상 왠만한 경우에 사용될 순 없는 표현인 것 같습니다. 어디 무슨 우화나 탈무드책에나 나올 것만 같은, 장님이 다리가 불편한 사람을 업고 함께 걸어간다는 이야기나 돕고 돕는다고 말할 수 있지, 평소 인간事는 그렇게 볼 수 없는 것 같아요. 더이상 서로 잘되며 돕고 돕는 것은 드물어졌거든요. 타인의 것을 뺏어오지 않으면 떵떵거리며 살 수 없게된 것이 현실입니다. 슬프지만 말입니다.

결국 두 사람이 기대고 서있다가 서로 상대방의 눈치만 보다가 (언제 뺏어올 수 있을까 말입니다) 더블KO가 되어버리는 겁니다. 뭐 가끔은 승자독식이라고 이긴 사람이 있을 때는 패자의 모든 것을 흡수하는 경우도 있겠지요. 다같이 알몸으로 태어나서 누구는 호의호식하고 누구는 굶주림에 떨어야 하는 게 다 그런 이유때문이지 않겠어요. 돌고 도는 것이 돈이라고 했는데, 일부의 손(手)들 사이에서만 도는 게 현실이지 않습니까.

간섭 그리고 간섭

사랑에는 국경이 없다라는 말이 심심찮게 나왔었는데, 21세기인 지금은 ‘지인’에는 국경이 없다라는 말이 나올 것 같네요. 그만큼 아는 사람이라는 게 점점 어중간해지는 것 같아요. 고작해야 펜팔이 최대였던 상태에서 이제는 세계 어디에 있든 손쉽게 연락을 하고 지내잖아요. 블로그만 해도 그렇습니다. 댓글로 서로 인사 몇번 주고 받다가 이름이 익숙해질 때면 어느새 아는 사이가 되어 버립니다. 아 물론 이 자체에는 별 문제가 없습니다. 좋은 의미에서의 지인관계를 굳이 마다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문제는 이런 공개된 환경을 악용하는 데에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의도적이지 않을 수도 있어요. ‘관음증’이란 단어가 있죠? (한때 기사로도 몇번 나왔었던 것 같은데) 기술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점점 ‘훔쳐보기’에 스스럼없이 물들어 가고 있습니다. 도촬이 사회적 이슈가 되는 것도, 그리고 이젠 현실에서의 스토킹이 아닌 사이버스토킹에 이르기까지, 무엇이 타인의 사생활에 그토록 집착하게 만드는 것일까요?

아 물론 저도 본성은 추악한 남자일지도 모릅니다. 여기 저기 손가락질을 해대며 제 자신만 깨끗한 척 하진 않겠습니다. 제 앞가림은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남 간섭에만 신경을 쓰는 분수도 모르는 놈일지도 모릅니다. 고로 본 글은 단순히 세상을 향한 외침만이 아니라 제 자신을 향한 질책이 될 수도 있겠네요.

선을 긋다 그리고 넘어선다

참 우스운 것이 NIMBY (not in my backyard) 라는 현상이 있죠. 다 좋지만, 자기에게 조금이라도 해가 되는 경우라면 결코 납득하지 않는 것 말입니다. 선을 긋고선 여기까지 넘어오면 안되 하면서, 정작 자신은 선의 반대쪽으로 자유롭게 넘어간다 말입니다. 실컷 남을 조롱하고 비난하면서 정작 자신의 잘못은 한껏 감싸안고 감춰두고, 어떤 지적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남의 사생활에 간섭하면서 자신의 사생활은 보호받길 원하는 뻔뻔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마치 그것이 당연하다는듯 말입니다.

반대의 반대까지 존중하라

가끔 여러 게시판에서 글들을 보면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오는 글들이 많습니다. 어떤 특정 주제에 대해서 자신은 상반되는 의견을 가지고 있으니 존중해달라는 경우가 많은데, 대다수의 경우 이런 자신의 의견이 반박될때는 굉장히 불쾌해하고 심지어는 욕까지 하게 됩니다. 딴에는 왜 자신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냐는 것이죠. 웃기지 않습니까? 자신의 이(異)견은 존중해달라고 하면서 자신의 의견에 대한 이견은 존중해주지 않습니다. 위선주의자가 따로 없는 것이죠.

왠만하면 이제 장문의 글은 안쓸려고 했는데 글이 밑도 끝도 없이 계속 길어지게 생겼군요. 이쯤에서 마무리를 지어야 겠어요.

요지는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점점 더 무심해지면서 동시에 많이 예민해지고 있습니다. 공간과 시간이라는 벽이 허물어지면서 전세계의 사람들이 자유롭게 소통을 하는 지금, 알게 모르게 우리는 타인의 사생활이라는 울타리에 스스럼없이 발을 들여놓고 있습니다. 가끔은 마치 자기 공간인양 눌러 앉아 버리는 경우도 많구요. 우습게도 동시에 자신의 비밀아닌 비밀 지키기엔 혈안이 되어서 정신이 없습니다. 개인정보 도용이 빈번한 요즘 자신의 개인정보를 지키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제가 이제껏 말하고자 했던 부분은 단순한 개인정보가 아님을 아셨으면 합니다.

누구에게나 초상권은 있습니다. 자신의 얼굴만 그리고 나아가서는 자신의 인격만 소중하다고 여기시는 사람들이 없었으면 합니다.

4 Replies to “간섭하길 좋아하지만, 간섭받길 싫어하는 인간”

    1. =0=; 오드리님 별말씀을 다하십니다. 부족한 블로그 들려주시는 것만으로도 전 감사한걸요 ㅋ

      ‘배려’가 최우선인 사회이긴 한데, 이 배려가 본래의 색깔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도 중요한 거 같아요.

  1.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점점 더 무심해지면서 동시에 많이 예민해지고 있습니다.”

    공감하는 부분입니다 넷에서의 소통은 관음증을 유발시키죠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차이가 심해지면서 온라인상에서는 이중적인 가치관이 함께 통용되는게 현실이 아닐까합니다 (뭐 현실도 그렇긴 하군요)

    그러나 온라인에서 사진위주의 포스팅은 결국 선택적 이미지를 제삼자에게 보여주는 성향이 강하다고 봅니다 결국 관음증을 염두해둔 꾸며진 이미지를 혹은 보여주고 과시하기위한 이미지를 만들어서 선택해서 올리는거죠 상대가 어떻게 해석하냐에따라서 원하는 방향으로 이미지가 전달되기도 하지만 그 반대도 상당한듯하고요 결국 온란인이던 오프라인이던 사람을 알가는것은 상당한 투자(?)가 필요하고 사람에대한 정보전달 측면에서만 보자면 익명성에의한 그 사람의 내면적 가치관을 진솔하게 글로 볼수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온라인 보다는 오프라인이 그 왜곡의 정도가 덜 하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봅니다.

    1. 안녕하세요. 🙂 의견 감사드립니다.

      제가 언급했던 관음증 부분은 아무래도 ‘본인’이 직접 올리는 사진보다는 ‘타인’에 의해서 유통되는 본래의 성격을 잃어버린 사진들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자의에 의해서 찍혔든 타의에 의해서 찍혔든 말이에요. 물론 자기과시용으로 올리는 사진도 많아지고 있긴 해요. 그만큼 사람들이 무심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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