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산다는 건 – 9. (졸업한지) 벌써 반년

4년, 길게는 5년이란 세월을 훌쩍 뛰어 넘을 생각은 없습니다. 대학 생활 이야기만 해도 아직은 하나에서 두개는 더 쓸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사실 짜내려면 한도 끝도 없겠지만 말입니다. (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벌써 반년이란 제목으로 글을 쓰는 이유는, 단순히 시간이 빠르게 간다는 것에 대한 한탄과 놀라움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미래에 대한 호기심과 공포를 떠올렸기 때문이에요. 사실 보이지 않는 것 그리고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동겸심이 생길만도 하지만… 저는 제 자신이 오늘 이 자리에 앉아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적잖게 있습니다.

조금만 시계를 거꾸로 돌려 보면, 이민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 것은 국민학교 때였습니다. 한창 순진할때 (6학년때 이야긴데, 요즘 초등학교 6학년이면 알거 다 아는 나인가요?) 이야기지요. 솔직히 책말고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컴퓨터 오락도 조금은 좋아하긴 했죠. /웃음) 그런 제게 해외로 나간다는 것은 잃는 다는 것이 없었어요. (친구들이나 친척들에겐) 조금 무심한 말이긴 하지만, 철이 없었다기 보다는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많았던 제게 새로운 경험이란 언제나 환영이었죠. 그리고 (몇번의 문제를 겪은 뒤) 3년뒤에야 저희 가족은 출국했습니다.

이민 온지 두자리 수 채워가는 것도 이제는 별로 놀랍지 않습니다. 이민자로서의 햇수가 이제는 더이상 별로 중요치 않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요. 차근 차근 돌이켜보면 희노애락을 모두 느꼈던 시기였지만, 이제는 과거보다는 미래에 점점 더 관심이 갑니다. 슬슬 시계를 뒤로 돌릴 때가 아니라, 이제는 앞으로 돌려볼 때가 온걸까요?

잠시만, 아주 잠시만 시계를 멈춰볼께요. 20대 중반 (돼지띠)인 전 운 좋게도 졸업후 바로 취직을 해서 회사를 다니고 있습니다. 대학은 4년제 였지만, 코압까지 포함해서 5년동안 다닌셈이네요. 1년은 회사에서 일을 한다고 나와있었지만, 학생 신분이었으니까요. 저와 학번이 같은 친구/형들도 대부분 졸업하고 이젠 직장인으로서 사회에 나와있습니다. 다들 바쁘게 살아가기에 (저 혼자 워터루에 동떨어져 있는 이유도 있지만) 얼굴 보기도 힘드네요. 산다는 게 이런 걸까요?

시계를 조금만 더 뒤로 돌려봅니다. 졸업여행이라고, 다같이 놀러온 것이 보입니다. 다들 이제는 자주 볼 수 없기에 서운했을까요? 뭐 슬픈 표정은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 군요. 미래를 걱정하기 보다 현실에 충실하는 편을 택해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시간을 거꾸로 돌리면서 세세한 장면을 모두 찾아보기 보다는 미래에 관련된 (그때의 미래가 지금의 현재인지도 모르겠군요 /웃음) 장면만 들여다 봅니다. 항상 만나면 무슨 대화를 나누든 꼭 돈 이야기로 끝납니다. 직장 이야기도 많이 하고, 어딜 가서 살게 될까 이야기도 하는군요. 졸업하고 사회나가면 사람만날 기회가 좀 더 줄어드니까, 얼른 여자 좀 만나라는 따끔한 충고도 많이 들립니다. (웃음)

아주 과거로 돌아갈려고 한 것은 아니니까 여기서 다시 현실로 돌아옵시다. 지금 현재 졸업한지 반년이란 시간이 흘렀어요. 아니 벌써? 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시간이 빨리 흘러 갔네요. 회사에 다시 돌아올 것이란 약속을 졸업하기 전에 이미 했던 저였기에, 제가 워터루에 살고 있는 것 자체는 별로 놀랍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좀 더 색다른 삶을 원했기도 했어요. 사실 연봉의 안정보다는 색다른 환경에서 사는 것을 꿈꿨습니다. 현실에 싫증이 난 건 아니지만, 뭔가 또다른 나를 발견하고 싶었달까요.

(졸업 후) 반년이 지난 지금 제게 있어서, 해외에서 산다는 건 그리 특별하지 않습니다. 사실 이젠 ‘해외’라는 단어는 한국외라는 것보다는 캐나다외라는 생각이 더 강하기 때문에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정 붙이면 고향이라는 데, 어딜 가서 살든, 시간이 지나면 다 그저 그렇게 되는 가 봅니다. 특별하게 확 많이 바뀐게 없어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분명히 변화는 있(었)겠지만 천천히 시간과 함께 변해가는 제 모습을 직접 느끼기란 쉽지 않잖아요. 🙂

이제 반년이지만, 곧 1년이되고 그게 불어나서 5년, 10년으로 늘어나겠지요. 대학 다니면서 상상했던 제 모습과 지금의 제 모습이 과연 얼마나 가까운지 또는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꿈을 꾸는 거라 믿었던 제가 이제는 꿈은 먹는 것이라 믿고 살아가고 있으니, 사람은 현실에 순응하며 살아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이 거짓은 아닌가 봅니다.

추-
이거 다쓰고 나니 앞뒤가 하나도 맞지 않는 것 같네요. 뭔가 분위기 좀 잡아볼려고 했더니 그것도 쉽지 않군요. (웃음)

8 Replies to “해외에서 산다는 건 – 9. (졸업한지) 벌써 반년”

  1. 예전에 알던 중국인 친구한테 한국에 놀러오라고 했더니
    “외국이나 여기나 사람사는 게 다 똑같지..” 라면서 해탈한 사람같은 말을 내뱉어서 속으로 너는 해외서 생활하는 게 얼마나 재밌는지 모르는 구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또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 친구 말도 일리가 있더라구요ㅋ 님 포스팅한 글을 읽다보니 왠지 저도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ㅎ

    1. 하하, 예 사람 사는게 뭐 다 똑같죠. 🙂
      좀 더 화려한 bachelor 삶을 살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에요 으흐흑 ㅜ_ㅡ

  2. 배첼러 를 꿈꾸시는 루드님이군요 흐흣흣..
    전 배첼러렛..
    근데 어째서 꼭 돈이 많은 독신남/녀 만 배첼러/배첼러렛 대접을 받는 건지..=_=

    요새 국딩 아니 초딩이겠군요 초딩들도..알 건 다 알지요.^^

    1. 에헤헤헤 제가 좀 와일드한(?!) 라이프를 꿈꾼다죠 버엉 😀
      돈은… 미혼이든 기혼이든 많아야 대접 받는 세상 아니었나요? 으허허헝 orz 그래서 제가 꿈을 접어야 한다는.

  3. 그런데 해외에서 그 ‘정’을 붙여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요. 적어도 제 경험에 의하면. 그리고 특히나 가족을 고향에 두고 온 사람들에겐 말입니다. 각설하고…얼른 여자친구 만드세요. ㅋㅋ

    1. 하긴 홀로 해외에 나와 있다면 쉽지 않긴 하겠어요. 제 경우엔 가족이 다 나와있기 때문에 좀 더 수월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네요.
      ㅋㅋㅋㅋ 여자친구는 제가 만들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닌 거 같던걸요? (아직 크게 바둥거리질 않아서 그런지도 -_-;; )

    1. 우왕 참 고민스러운게, solitude를 즐기면서도 동떨어져 있다는 것이 슬프기도 하고 -_-; 어디서 뭘해도 2% 부족하네요 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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