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삼스레 달력을 뒤적이며 날짜 계산을 해봤습니다. 1999년 초에 와서 벌써 2017년. 단순 햇수론 18년이 넘었고, 이민생활을 한 햇수가 이미 한국에서 살았던 기간보다 오래전에 더 많아졌네요. 서당개 풍월을 읊을 시간을 6번이나 겪은 지금, 누군가에게 이민생활에 관해 감히 조언해드릴 위치에 놓인 것은 전혀 아닙니다만. 그동안 겪었던 경험과 쌓인 생각들은 혼자 가슴에 담아두기엔 아쉬움이 적잖습니다. 굳어진 작문 실력으로 떠듬떠듬 풀어내려니 마음만 저 멀리 앞서있네요. 생각한 대로 쉽사리 글 타래를 풀어나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으니, 미리 양해를 구하고 싶습니다. 조금은 빈약하게 느껴지고 가끔 매끄럽게 흐르지 않더라도, 넓은 아량으로 받아들여 주세요.
이민 초기 수년 동안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겪으며, 매일 등하교 동안 혼자 영어로 상황극을 만들어내며 연습을 하던 기억이 납니다. 머릿속에서 급하게 한국어로 먼저 생각하고 영어로 표현해내던 어려움을 이겨내고, 13학년 (OAC) 작문과제로 첫 A를 받았을 때의 감격이란! (정신적으로 성숙해지고) 눈이 높아진 탓에 14년 전에 쓴 글이 지금 와선 많이 모자라 보이는 것도 있지만,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큰 도움이 되었던 건 사실이에요. 원어민이 아니더라도 하면 된다는 생각이랄까요. 물론 근본을 알 수 없는 자만심이 조금 생겼던 것도 사실입니다. 지금 와선 항상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것을 되새기고 합니다만, 젊은 혈기에 높아진 콧대를 쉽사리 낮추지 못한 기억이 나네요. http:/502 에서 간략히 다뤘었지만,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서 후회하는 것만큼 시간 낭비인 것도 없지만, 이것저것 실용적인 것들에 시간을 할애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가끔 듭니다.
그러고선 대학을 가게 되고, http:/563, http:/564, http:/565 그리고 http:/566 에서 다뤘던 대로, 이런 일 저런 일 많이 겪었습니다. 고등학교 학창시절 (4년 반)이 이민생활의 첫 획을 긋는 시기였다만, 대학 시절은 정말 또 다른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냈던 것 같아요. 상상 그 이상의 시기였달까요. 술에 취해 필름이 끊긴 적도, 온라인 게임에 빠져 낮과 밤이 바뀐 적도, 그리고 사무친 애정에 밤잠 이루지 못했던 시간. 아직 학생이기에 가능했던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실패가 두렵지 않고 언제나 열정이 넘쳤던 젊음. “현재”를 가장 제대로 즐겼던 시기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회생활에서 올 수 있는 처절한 눈치싸움에서 자유로웠던 시기였기에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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