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산다는 건 – 4. 이름, 정체성 지키키

옛날에 한남자가 (널 너무 사랑한~ 뭐래니) 있었습니다. 여느 누구와 마찬가지로 성과 이름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 먹습니다. 어느덧 국경에 다다르고 문지기와 대화를 나누게 됩니다.

문지기: 이름이 무엇이뇨?
남자: 박효민입니다.
문지기: 성이 효민이고 이름이 박인가?
박효민: 아뇨, 출생이 대한민국이니, 표기법에 맞게 박이 성이고 효민이 이름입니다.
문지기: 이 문을 나서게 되면 자네는 대한민국 영토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이네. 외국인을 만나서 통성명을 하자면 그에 맞는 이름 표기법을 써야 하지 않겠는가.
박효민: 그럼, 이름이 먼저 오고, 성이 나중에 오게 되는 것인가요?
문지기: 로마자 표기법이 그러하네. 아니 자넨 영어시간에 그런 것도 안배웠나?
박효민: 물론 배웠지요. “성, 이름” 또는 “이름 성” 의 두가지 표기법이 가능하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문지기: 이름은 first name 이고, 성은 last name 인 것도 알겠지?
박효민: 예. first name은 given name 이라 불리우고, last name은 family name 이라고 불리기도 한다는 걸 배웠습니다.
문지기: 그렇지 last name은 보통 surname 이라고 불리우기도 한다네. 자세한건 위키피디아를 보도록
박효민: 예? 위키피디아가 무엇입니까?
문지기: 10년전의 자네에겐 무린가? 하하하하 (/먼산)
박효민: 어쨋거나, 세계로 나가려면 그에 맞는 이름 표기법이 필요하겠군요.
문지기: 흠흠, 그렇지. (아직은 표기법이 제대로 정해져 있지 않은 상태이니) Hyo Min Park 은 어떠한가?
박효민: 아니 왜 효와 민이 따로 떨어져 있나요?
문지기: 글쎄, 영사관에 물어봐야 하지 않겠나? 아무튼 자네 여권엔 그렇게 적어 두겠으니, 그렇게 알고 있게나.

이름 성. 성, 이름을 속으로 되새기며 문을 나서던 남자를 붙잡는 문지기가 말하길,

문지기: 이보게, 그래도 명색이 세계화 시대인데, 영어 이름도 있어야 하지 않겠나.
박효민: 에, Hyo Min Park으로 부족할까요?
문지기: 현지인들에겐 발음이 쉽지 않을 듯 하니, 좀 더 편한게 어떤가?
아버지: (특별출연) 내 아들 영어 이름은 Brian 으로 합세.
박효민: 아버지!
문지기: Brian 괜찮네. 그렇게 하세
박효민: 좋은 게 좋은 거겠죠.

그렇게 번갯불에 콩볶아 먹듯 Brian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다. 어딜 가더라도, Hyo Min 이라는 이름외에 Brian이라고 표기를 하다 보니, Hyo Min Brian Park 이란 우습게도 Brian이 middle name식으로 굳어져 버렸다. (갑자기 반말을?!)

여권을 손에 든 남자는 여행을 계속 합니다. 여행을 하는 도중,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 눈이 시퍼런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낯선이1: 안녕하세요.
박효민: (눈이 파래!) 아 예, 안녕하세요. 한국말을 하시네요. (눈이 파란데도) 한국분이신가요?
낯선이1: 하하 아뇨. 캐너디언입니다. 한국말을 하는 게 아니고, 필자가 영어로 글을 적기 귀찮은 거겠지요.
박효민: 그럼 저는 지금 영어로 대화를 하고 있는 거군요.
낯선이1: 예, 전 낯선이1 이라고 합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 지요?
박효민: (배운대로) 효민 박입니다. 정확한 철자는 (신분증 대용으로 여권을 보여주며) 이렇게 됩니다.
낯선이1: Hyo Min Park. Hyo가 first name이신가 보군요?
박효민: 아뇨, Hyo Min 이 제 first name입니다. 한국에는 middle name의 개념이 없답니다.
낯선이1: 그런가요…

남자는 그제서야 깨달았습니다. 이름이 띄어져 있다는 것이 오해를 불러 일으킨다는 것을 깨달은 남자는 다른 방식의 표기 방법을 고민합니다. 수많은 검색을 통해서, 이름 사이에 하이픈 (“-“) 을 넣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그는, 만나는 사람마다 자신의 이름이 Hyo-min 임을 강조합니다.

박효민: 아니 아니 그게 아니야, Hyo-min. 효. 민. 따로 따로 발음해서.
지나가는이1: 왜 지나가는 나를 붙잡고 난리인건데.
박효민: (그냥 예를 들려니 이름이 생각 안나잖아) 욕은 필자한테 하고, 자 따라해봐. 효. 민.
지나가는이1: 효.민.
박효민: 그렇지. 하이요민도 아니고. 횸인도 아니고. 효민.
지나가는이1: 그냥, 브라이언 (Brian) 으로 안될까? 귀찮은데.
박효민: (야이 나쁜넘아, 내 본명을 맘대로!) … 그렇게 할래?

세월은 흘러 흘러, 어느덧 4년. 당당하게 세계인임을 밝히기 위한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열심히 작성하던 문서에 빈칸을 채우던 중, 이름 란에서 잠시 고민하게 됩니다.

박효민: 으음, Brian을 꽤나 오랫동안 써 왔는데. 어쩌지, 그냥 이제 Brian으로 개명을 해버릴까?
가족: (우정출연) 그렇게 할래? 근데 이름 바꾸는 거 그냥 그렇게 쉽게 되나?
박효민: 뭔가 따로 서류 작성이 필요한 거겠죠?
가족: (어느새 변호사에게서 알아 본 후) 이름을 다르게 하려면 court order 란게 필요하다는데?
박효민: 엑, 법원에 개명을 신청해야 하는 거에요?
가족: 그런가 보네…
박효민: …
가족, 박효민: (다함께) 그냥 효민 해야겠네.

사족입니다만, 어찌된 일인지 시민권에는 Hyomin 이라고 붙어져 있네요. 지금와서 생각하면, 불행중 다행이랄까.

Hyo-min으로 수년간을 살다가,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는 말을 듣고선, 남자는 호랑이를 잡으러 갑니다. (응? 전래동화냣!) 라기 보다는, 세계화 시대에 다양한 민족과 융합하기 위해서 여행을 중단하고 입사를 결심합니다.

입에 풀칠하기 쉽지 않다보니, 어떻게든 주변 사람들의 비위를 맞춰주기 위해 용을 씁니다. 근데 남자는 다른 건 다 참아도, 이름이 잘못 불리워지는 건 싫었습니다. 왜 그런걸까요?

지나가는이2: 근데 그거 알아? 하이픈은 이름 두개를 붙이기 위해서 쓰인다는 거?
박효민: (넌 누구냣!) 응? 처음 듣는 걸.
지나가는이2: 오늘은 내가 기분이 좋으니 가르쳐주지. 이름이 두개가 있는 데 어떤걸 써야 할지 모르겠거나 두개다 사용하고 싶을 때 보통 하이픈을 사이에 넣어서 붙여 버려. Marie-Louise 같은 것 처럼 말야. 보통 친척 웃어른 이름에 자주 따와서 자식의 이름에 넣곤 하거든. 아주 Middle name으로 만들기도 하고, 하이픈을 넣어서 first name으로 만들어 버리기도 하고 말야.
박효민: (이 자식, 너무 자연스럽게 나와 대화를 나누는 군) 음 그럼 여전히 first name인거네?
지나가는이21: 물론 그렇긴 하지만, 이름이 두개를 붙여서 만들었다는 인식이 강해서 앞의 단어만으로 부르게 되거든.
박효민: 그럼 Hyo-min 이라고 가르쳐주면, Hyo랑 Min을 붙여서 이름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려나?
지나가는이2: 그렇지. 앞에 예를 든거 처럼, Marie-Louise 라는 여성이 있다면, 그녀를 Marie 라고 간략하게 부르게 되는 거 처럼 말야.
박효민: 그럼, 난 효 라고 불리우게 되겠네.
지나가는이2: 의도하지 않은 대로, 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게 될꺼야.
박효민: (오지랖도 넓은 놈…) 지나가는이1, 참으로도 고마워!

남자는 다시 고민에 빠집니다.

Hyo Min
Hyo-min
Hyomin

셋 중에서 무엇을 골라야 하는 걸까요?

대충 이해가 가셨을려나요? 과연 얼마나 많은 분들이 표기법 때문에 고민하실지는 모르겠지만, 오래전에 이민을 오신 분들이라면 저와 비슷한 경우일거라 믿습니다. 물론 저는 괜스레 하이픈 까지 끌어들여서 더욱 일을 복잡하게 만들긴 했습니다. 🙂

제가 9년이 넘게 캐나다에서 살면서 만들게 된 신분증및 카드들. 전부 다 이름 표기가 제각기로 되어 있어요. 운전 면허증엔 Hyo Min 이라고 되어 있고, 시민권에는 Hyomin 이라고 되어 있고. 사원증에는 Hyo-min 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몇몇 카드에는 Hyo Park 이라고 찍혀 있기도 해요. 카드회사측에서 면허증을 보고는 Min을 middle name으로 착각하고 Hyo만 first name이라고 찍어서 그런거죠.

하이픈을 넣어도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마찬가지예요. Hyo-min Park이라고 이메일에 꼭 꼭 찍어놔도, 회사내에서도 잘 모르는 사람들은 Hyo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앞으로 걸어야 할 길이 까마득한데, 아무래도 (조금은 늦었지만) 지금부터 제대로 잡아야 겠죠?

하이픈을 넣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은 8년동안 써왔던 Hyo-min 이라는 이름을 버리기로 했습니다. 좀 불만족스럽긴 하지만, 안전하게 Hyomin으로 가야 겠어요. 대신 단어가 다닥다닥 붙어 있으니… 처음 보는 사람들은 효민이라고 제대로 발음을 해줄지 의문이긴 합니다. 😛

아무래도 중요한 건 자기 자신일 것 같습니다. 이름 표기법이 달라졌다고 해서 제 자신이 다른 사람이 된 건 아니잖아요. 나는 나.

추-
http://www.kate.or.kr/Contents/PapperSubmission/guideines_01.asp 에 의하면 혼동의 여지가 있을 경우에는 하이픈을 사용하여 분리할 수 있다고 하는 군요. 횸인이라는 이름이 있지는 않을 거니, 효민/횸인 같은 걱정을 할 필요는 없겠죠?

추2-
이름을 통일화 하길 결정을 내렸다면, 전화 연락을 해야 할데가 한 두군데가 아닙니다. 신용카드도 바꿔야 되고, 은행에도 전화를 해야 되고… 케이블/전화 회사에도 전화를 해야 되구요…

일하고 있는 회사쪽에서도 바꿔야 할 부분이 꽤나 있군요… 크흑

13 Replies to “해외에서 산다는 건 – 4. 이름, 정체성 지키키”

  1. 제 경험상으로는.. 그냥 이름에 하이픈도 스페이스도 없이 두 음절을 다 붙이는게 아무런 문제가 없더라구요.. 저도 여기 처음 왔을때 yearbook에 ‘jae’라고만 찍여 나와서… 그땐 나름 마이 속상했었어요 ㅡ ㅡ

    1. 첫음절이 jae이신가 보군요. 제 동생도 jae인데, 지금은 jay 라는 애칭을 쓰고 있어요. 🙂
      빨리 휘갈겨 쓰다 보니 빼먹은 것들이 있는데, 처음 왔을 때는 영어이름으로 Brian을 썼답니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는 별로 이름표기에 별로 신경을 안 썼어요.
      대학 졸업하니 이제서야 신경이 쓰이네요 으흑

  2. 저같은 경우에는.. 한국 여권에도
    chulhee로 붙여 쓰다보니 사람들이 완전 이상하게 발음을 하는데..
    오히려 중간에 스페이스를 주니.. 사람들이 그제서야 발음을 좀 제대로 하더라고요..
    그래서 계속 그냥 띄어쓰기로 나갔죠..

    저도 위에 별헤는밤님처럼.. facebook에서 chul 만 나오더라고요… ㅋ
    근데 저같은 경우는 영어이름을 따로 안쓰다 보니… 편하게 하라고 chul로 불러달라고 많이 하고 다녔던지라..별로 이상하지는 않더라고요…ㅎ

    1. 음… 처리 또는 추리라고 읽게 되겠네요. 붙여서 쓰면 발음하기가 애매해지는 분이 많이 계실 것 같아요.
      저는 하이요민이라고 하는 것만 제외하곤 괜찮았던 거 같은데 말입니다. (웃음)
      동생도 그냥 애칭으로 Jay 라고 쓰고 있어요. 나름 좋아하는 것 같던데. 😀

  3. 효민이나 횸인이나 모두 같은 발음 아닌가요? ㅋㅋ
    그나저나 세가지 이름을 써 오셨으면서 오해받은 적은 없으셨는 지 궁금하군요. 하루빨리 통일하시길. ^^ 트랙백 고맙습니다. 저도 쏩니다.

    1. 하하, 그러고 보면 둘다 같은 발음이 될 수도 있겠네요. 횸인하면 이상한데, 큰일이군요. 😛

      글 수정하는 동안 그새 답글을 다셨네요. 이름이 달라서 크게 고생은 하지 않았습니다만, 귀찮은 적은 많았어요. 특히 지금 하나로 통일하려고 하는, 지금이 제일 귀찮군요. 전화 넣을 곳이 너무 많아요. 은행이며 카드며… 쿠악

  4. Pingback: Oddly Enough
  5. 제 이름 구글에 쳐봤다가 구경하고 갑니다. 저는 여잔데 남자분이 신가 보네요, 이 이름이 참 중성스러워서 ^^;;; 이름으로 겪었던 일화들이 참 비슷하네요. 전에 영국에 있을 때 저도 누가 하요민이라고 부르데요 ^^;; 지금은 캐나다 퀘백쪽에 사는데, 불어 발음으로 “욤맹”이라고도 불린답니다, 가끔 ;;
    전 제 이름 어려워 해도 그냥 우기면서 씁니다. 희한한게 이름을 불러주면 다들 .”쿄민”으로 듣는다는 거예요. 제 동명이인은 그런 일이 없으셨는 지요? ^^ ㅎ 발음이 음절 앞에 있어 거센소리가 되어 나와서 그런건지..
    저는 가운데 하이픈을 쓰는데, 여권에 Hyo Min으로 되어있다고 공식적인 서류에는 제가 아무리 Hyo-Min으로 작성해도 Hyo Min으로 표기 됩니다.

    헛튼 반갑습니다~!

    1. 메헤헤헤, 댓글 리스트에 제 이름이 달려 있길래, 엥? 싶었는데 이름이 같은 분이셨군요. 반갑습니다. 😀
      효민이란 이름을 가진 여성분들도 많으신 것 같아요. 예전에 mirc에서 놀때도 다들 오해하시는 분들이 계시더라구요. (물론 제가 장난스럽게 굴었던 부분도 많이 있었습니다만 :P)

      이름은.. 고등학생때까지는 그리 신경을 쓰지 않다가도 좀 머리가 더 굵어진다 싶더니, ‘내 이름인걸’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저도 우기면서 쓰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하이요민 이라고 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지만요. -_-;
      ㅎㅎ 그러고 보면 쿄민이라고 오해를 산 적도 간혹 있었던 것 같긴 하네요. 그럴때면 효!라고 우겨줘야 됩니닷!

      퀘벡에 계신다면, 불어까지 하시는 건가요? 음 저도 3개국어 이상을 하는 것이 목표인데 으흐흑 ㅜ_ㅡ

  6. 앗 저는 다행히(?) 이름이 쉬워서.. 읽는데 큰 문제는 없지만.. 사람들에게 이름 알려주면 항상.. 응? 뭐라고? 라는 반응이 돌아와요 🙁
    (그렇게 어려운 이름도 아닌데요)

    저는 그냥 하이픈 없이 붙여 쓴답니다.

    1. 예 결국 저도 하이픈을 없애버렸어요. 이름 자체는 (제 생각에는) 그리 어렵지 않은 것 같은데, 쉽게 외우지 못하는 분들이 종종 계시더라구요. 그래도 평범한 이름이 아니라서 좀 더 임팩트가 강한거 같긴 해요. 그냥 단순히 마이크, 브라이언 식이면 너무 평범할 것 같은데 말이에요. 🙂

  7. 저랑 똑같은 고민을 하셨고 결론까지 똑같군요. 하지만 저는 주위 사람들에게는 영어이름으로 부르게 합니다. 최근호 –> Keunho Choi –> 키윤호 초이…….

    1. 으 발음이랑 외 발음이 잠 힘든 거 같아요. 요 발음도 쉽지 않구요. -_-; 근호님도 이름때문에 고생 많이 하셨을 것 같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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