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압/인턴 후기] 2부 – 순진한 사원 일을 그르치다…

이건 뭐 학생도 아니고 정사원도 아니야

정체성의 확립이란 게 사춘기때 이미 겪었고 다 옛날 이야기라고 생각했는 데, 막상 다시 겪게 되니 기분이 묘하더군요. 😛 작년 9월, 일을 시작하고 시간이 차츰 흐르면서 스스로를 학생이라 부르기도 애매하고 사원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하더군요. 아직 졸업전이기도 하니, 계약직이라고 부르기엔 ‘과찬’일 것 같기도 했구요. 참 애매 했습니다. 코압이라고 회사내에서 우습게 보여지거나 하는 건 아니었지만, 정사원만큼의 권한을 지닌 것은 아니라서 살짝 눈치가 보이는 입장이고 하거든요. 덕분에 직장내 농담거리로 항상 등장하는 것이 코압이기도 합니다. 🙂

결국 제목을 사원이라고 붙이기는 했지만 정사원은 아니니 이건 사원이면서 사원이 아니기도 한 우스운 위치에 놓이게 되네요.

순진하기 그지 없다

학교가 배움의 장소라고는 하지만 모든 것을 배우지는 않습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도 하구요) 현장에서 뛰기 전까지는 책을 통한 배움을 실질적으로 적용해볼 기회가 없기에, 막상 뭔가를 하려면 많은 부분에서 서툴기만 합니다. 육체적인 노동을 요구하는 직종은 아니라서 겉으로 드러나는 실수는 거의 없습니다만, 알게 모르게 신경이 많이 쓰이네요.

실은 초기에는 “많이” 배우는 입장이기에 회사측에서도 아주 어려운 일이나 크게 중요한 일은 잘 맡기질 않습니다.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는 법이라서 아예 회사 말아 먹을 실수만 아니면 넘어가는 게 대부분이구요. (회사 나름이지만) 덕분에 일 자체를 배우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뭔가를 24/7 고민해가면서 참신한 아이디어를 떠올려내야 했던 것도 아니고, 림 자체내의 규율도 느슨한 편이라서 큰 어려움은 없었어요. 순진했기에 열정도 넘쳐났었고 덕분에 배울 수 있는 기회도 많았습니다.

물론 이 순진함이 항상 이롭기만 한 건 아니었습니다. 특히 (일전에 몇번 포스팅 했던 것 처럼) 넘쳐나는 열정을 주체할 수 없었던 ‘질풍 노도의 시기’도 있었구요. 회사가 클 수록 분화가 잘 되어 있기에 일들이 효율적으로 분화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혼자서만 모든 일을 다 처리할 수 없는 것 또한 현실이랍니다. 학교에서 해왔던 것 처럼 혼자서 가볍게 일을 시작하고 마무리짓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일이 진행이 안될때 혼자서만 바둥바둥 거린다고 해서 안될 일이 갑자기 해결되는 경우가 없기에 편하게 마음을 먹는 인내심이 자주 필요하게 되더군요.

만사형통?

만사형통, 정말 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지금은 ‘편하게 일하는 방법’에 많이 익숙해져서 그나마 나은 편입니다만, 초기에는 심히 불편했습니다.

제가 성격이 소심하면서도 동시에 곧잘 욱하는 편입니다. 물론 바깥으로 표출해내지는 않지만 많이 쌓이면 폭팔할 것 같은 화를 감당하지 못해서 혼자 자폭해버리기도 합니다. 😀 운동을 하면서 스트레스 문제가 많이 해결되긴 했지만, 궁극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 중요했었지요.

회사가 크면 클 수록 부서간의 대립도 생기게 마련입니다. 물론 나쁜 의미에서의 대립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과 문제 해결을 우선시하기에 어쩔 수 없이 생기는 대립이에요. 각 부서마다 맡은 일이 다른데,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이전에 다른 부서의 문제점을 떠 안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어요. 이 ‘정치적인’ 요소들 덕분에 초기에 맘고생을 좀 했습니다. 팀장이 팀원들에게 손가락질 하면서 책임을 떠안기는 성격은 아니라서 그나마 나았지만 제 자신 스스로가 익숙해지지 않으면 고생길이 훤했었죠.

고진감래: 아픈만큼 성숙하고

힘든 일이 있으면 좋은 일도 있게 마련인가 봅니다. 초반에 신경을 썼던 것을 회상하면 슬며시 웃음이 나올 정도로 많이 익숙해졌네요. 더군다나 처음에 열정적으로 돌아다녔던 덕분에 지금은 꽤나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처세술에도 익숙해져서인지, 문제가 있을 때면 더이상 혼자 끙끙 앓고 있을 필요가 없게 되었어요. 🙂

앞으로 졸업 후 본 회사로 돌아 올련지 아니면 새로운 회사를 찾게 될련지는 곧내 밝혀질 것 같습니다. 고생한만큼 정도 많이 쌓였는데, 돌아오면 좋겠지만, 막상 돌아와서 일을 시작하면 너무나 편해져서 안이해지진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몇부작으로 가게 될련지… 다음 3부는, ‘SV&V란 무엇인가’ 라는 제목으로 제가 일했던 팀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적어볼까 합니다.

2 Replies to “[코압/인턴 후기] 2부 – 순진한 사원 일을 그르치다…”

  1. 애매한 상황에서 처세술을 더 확실하게 배운다고 하지요. 제 경우 인턴쉽 류의 일은 자폭을 하지 않고 중간에서 줄타기를 잘 하는게 관건이더군요. 수고하셨네요.

    1. 🙂 감사합니다.
      1년동안 배운 것도 많고, 느낀 것도 많아요. 사회 생활을 아주 완벽히는 아니지만 직접 체험해봤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크나큰 만족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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