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정액제 + 홈네트워킹: 천국

일전에 KT가 처음 인터넷 종량제 이야기를 꺼냈을 때, 관련 글을 하나 쓴 적이 있습니다만, 오래전의 글인지라 본 블로그엔 없네요. DB백업 해둔 것이 있나 뒤져 봐야 겠습니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해외에 살면서 한국이 부러웠던 것 중 하나가 인터넷 환경이었습니다. (한국 내부 인프라내에서만 적용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음악 파일 하나 눈깜짝할 사이에 받고, 동영상 하나도 매우 빠르게 받을 수 있다는 경험담들은 이제 막 케이블 인터넷이 도입되기 시작한 수년전의 나에겐 말 그대로 먼나라 이야기였어요. 부럽기도 했었고, 궁금하기도 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저렇게 싼값에 빠른 인터넷을 쓸 수 있는 지, (지금 생각하면 철없었는 지도 모르겠지만) 그저 막연히 부러울 뿐이었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KT의 공유기 제한 도입에 대한 불평, 불만글들은 모두 다 배부른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습니다. 종량제도 아닌 정액제로 쓰면서, 무작정 되는 대로 컴퓨터를 물려서 쓴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한국에 사는 사람들은 체감하지 못하나 보군요. 캐나다에 살면서, 몇 안되는 케이블/ADSL 업체를 통해서 빨라야 평균 6 Mbps 정도의 인터넷을 사용하는 저로서는, 거기다가 정액제도 아니고 대역폭이 정해져 있는 반정액제 + 반종량제의 인터넷을 사용하는 저로서는 참 먼나라 이야기일 수 밖에 없네요.

인터넷 속도: 마케팅 전략

우선 다들 걸고 넘어지는 인터넷 속도 문제. 그냥 그러려니 넘어가라는 것은 아니지만, 원래 광고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평균적인 수치’를 내세우기 보다는, 이론적으로 가능한 ‘이상적인 수치’를 내세우기 마련이에요.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배터리 수명 수치가 평균적인 사용보다는 아주 최대로 쥐어 짜내서 사용할 수 있는 경우를 예로 든 것처럼 말입니다. 더군다나 인터넷이란게 거리가 멀어지면 멀어질 수록 속도가 느려지는 게 당연하기 때문에 지역마다 체감속도는 천차만별일 수 밖에 없습니다. 수치에 불과한 속도측정 가지고는 객관적인 판단을 내리긴 힘들지요.

그리고 다들 아시리라 믿습니다만,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Mbps 는 bit 를 표현한 것이기에 윈도우 운영체제에서 주로 사용되는 Byte 단위로 바꾸려면 8로 나눠야 합니다. 일례로 KT 메가패스 프리미엄은 50M로 표현되어 있네요. 이를 8로 나눌 경우 대략 6 Mbyte 정도 나옵니다. 이는 초당 ‘최대’ 6메가를 받을 수 있다는 거에요. 보통 광고의 60~70% 정도 속도만 나와도 제대로 나오는 것으로 파악됩니다만, 초당 ‘최대’ 4메가라고 해도 이미 ‘눈 돌아갈’ 정도의 속도군요. 북미 인터넷의 10배 정도는 되는 것 같습니다.

정액제의 무서움: 무한 자장면 무료 한그릇 추가

인터넷을 자장면 또는 우유 배달에 비교하시는 분이 많으신 데, 이건 잘못된 비유입니다. 우선 인터넷 정액제의 경우엔 자장면을 한그릇 시켜서 나눠 먹는 것이 아니에요. 자장면은 대역폭에 비유가 되어야지, 속도에 비유가 되어선 안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예를 들자면, 속도는 자장면 한그릇의 양과 같습니다. 자장면 한그릇 자체를 두명이든 세명이든 나눠서 먹는다면 솔직히 가게 주인이 불만을 가질 것은 없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한그릇 분량에 맞춰서 나온 자장면을 여럿이서 먹고 지속적으로 추가하는 것이 문제라는 거에요. 정액제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먹은 만큼 돈을 내는 것이 아니라, 돈을 내고 무한정 먹는다는 것이 문제에요.

우유에 비교한 것도 비슷한 이치입니다. 우유 한병을 여럿이서 나눠 마시는 게 문제가 되는 게 아닙니다. 우유 한 병안에 들어가는 양이 인터넷 속도에 비유되는 것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지만, 정액제라면 우유 ‘한 병’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마실 수 있는 만큼’ 마시는 게 되겠네요. 예를 들어 우유 배달 업체에서 ‘all you can drink’ 제도를 도입했다면 이는 한명이 마실 수 있는 만큼의 양을 말하는 것입니다. 근데 이걸 혼자서 마시는 것이 아니고 뒤에 숨어서 여럿이서 나눠 마신 뒤에, 마치 혼자서 다 마신 듯이 계속 우유를 추가시키는 행위가 문제가 되는 겁니다.

좀 더 정확한 비유를 하려면 부페를 예로 들 수가 있겠네요. 만약 부페에 여럿이서 한사람 몫의 돈만 내고 그릇 하나로 나눠 먹는 다고 해보세요. 그릇이 빨리 비워지겠지만, (돈을 낸 사람이) 계속 채우면 되니까 귀찮아도 별로 문제가 될 건 없습니다. 억지라고 생각되세요? 인터넷 정액제를 사용하면서 다수의 컴터를 연결해서 사용하는 것은 예로 든 부페 이야기와 하나도 다를 바가 없어요. 한사람만이 무한정 먹을 수 있는 양을 억지로 부풀려서 여럿이서 무한정 먹을 수 있게 만들고 있는 겁니다. 만약 종량제라면 공유기 사용이 문제가 될 건 없겠네요. 몇대를 물리든 사용한 만큼 내면 되니까, 업체도 불만이 없을 겁니다.

인터넷을 도대체 어디에다 쓰는가?

솔직히 인터넷을 합법적인 용도로만 쓴다면 아주 ‘미친듯한 속도’의 인터넷도 ‘터질듯한 대역폭’도 필요 없습니다. 아무래도 한국내 인구의 반 이상이 즐겨 쓰는 웹하드 업체들 때문에 문제가 되고 있는 것 같군요. 불법 공유 문제는 별개의 문제긴 하지만, 아주 연관이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애시당초 종량제 도입 이야기가 나왔을 때 강한 반발이 나왔던 것도 다 이 인터넷 상 불법 공유 문제 때문이었다고 생각되네요.

제도 개혁

기술만 발달해서는 제대로 그 기술을 즐길 수 없습니다. 인터넷 인프라가 구축되면 그에 걸맞는 제도가 필요한 법이에요. 소비자는 무작정 편한 쪽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어느 적정선에서 타협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제가 보기엔 한국에도 반정액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 군요. 웹하드 업체 죽이기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일정 정도의 대역폭을 제공하고 그 이상을 사용할 시 추가로 요금을 받는 겁니다. 이미 캐나다에선 실행되고 있는데, 한국에서 시행되면 얼마나 많은 호응/반발을 불러 일으킬지 궁금하군요.

그래도, 다 같이 죽자는 것은 아니겠지요? 현실에 천국이 없다는 것은 다들 알고 있지 않습니까?

8 Replies to “인터넷 정액제 + 홈네트워킹: 천국”

  1. 한 개의 회선에 10대의 컴퓨터를 연결하더라도 해당 회선의 대역폭은 동일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10대의 컴퓨터가 동시에 파일을 주고 받는다면 해당 컴퓨터들의 전송 속도가 떨어질 뿐이겠지요. 내가 최대 10mbps의 속도를 보장하는 요금제에 가입해서 쓴다면, 그 10mbps 속도 안에서 사용하게 되는 것 아닌가요?…

    1. 제가 생각하는 대역폭과 mindfree님이 생각하는 대역폭이 다른 가 봅니다. Bandwidth (대역폭)은 수도관에 비유되었을 때, 한번에 얼마나 많은 물이 흐르는 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물이 일정 시간동안 흐르는 가가 되겠네요. 일례로 캐나다 현지에선 한달동안 30기가바이트의 대역폭을 각 사용자에게 할당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소수지만 이 30기가를 넘어가는 사용자들에게는 추가 대역폭 사용마다 요금을 더 받고 있어요.

  2. 뷰페하고 공유기를 이용한 컴퓨터 연결은 맞지않는듯 하네요~
    뷰페에서 공유기연결과 비슷한 형태는 한 입, 2 (3, 4…) 몸의 형태가 맞겠죠..
    이런 경우 뷰페는 돈을 한 입, 3 몸부터 돈을 받는건가요??

    1. 상황에 따라 아기님이 지적해주신 설명도 맞을 테고, 입이 여러개인데 몸은 하나인 설명이 맞을 수도 있고 제가 지적한 설명이 맞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컴퓨터의 경우엔 개개인의 컴퓨터가 각각 따로이 대역폭을 소비하는 것이기에 본문과 같은 예를 들었던 것이에요. 실은 입이 몇개이든 상관이 없습니다. 얼마만큼의 양이 소비가 되냐가 중요한 것 같네요.

  3. usage가 정해져 있긴 하지만, 솔찍히 체크는 안하는 것 같아.
    한동안 하루종일 디비디소스만 받곤 했는데,
    로저스측에서 아무말 없었던거 보면
    별문제가 없으니 그냥 냅두는건 아닐까.
    두번 경고주고, 세번째에 끊는다고 했는데
    그럼 난 예전에 벌써 끊겼지 ㅋㅋㅋㅋ

    1. Rogers 경우에는 심하게 규제하지는 않는 것 같아. 디비디 소스를 받을 경우에 60기가를 영화 13개정도 받을즈음되면 다 쓰게 되는데, 한달동안 영화 소스 20~30개 받아도 심하게 몰아부치지는 않을 걸. 벨의 경우엔 추가료를 냈다는 사람을 본 적이 있어서 그래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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