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문화: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 – 제 1부 수평적인 문화 vs. 수직적인 문화

제목은 위와 같이 썼지만, 실은 무엇이 옳고 그르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언제나 그렇듯 시비를 가른다는 것은 개개인의 견해차에 따라 극과 극을 달리게 마련입니다. 자신이 다른 누군가를 비판한다는 것 또한 참 우스운 일이죠. 과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겁니까? 복제인간으로도 불가능한 육체적/정신적인 경험과 고통을 모두 이해할 수 있다는 겁니까?

왠 시니컬한 문단이냐고요? 지금 메타 블로그 사이트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태그가 사직서 입니다. 구구절절한 사연이 있었을 것만 같은 긴 장문의 사직서이지만, 호응보다는 반발이 더 많은 것 같군요. 아무래도 동의성이 짙은 글 보다는, 비판류의 글이 사람들의 이목을 더 끌게 되어 노출빈도가 더 높아져서 그런가 봅니다.

논란이 된 사직서는 직접 읽어보았습니다.

원문 접어둡니다. 읽으실 분 클릭해주세요.
=========================
[삼성물산 46기 신입사원의 사직서] 1년을 간신히 채우고,
그토록 사랑한다고 외치던 회사를 떠나고자 합니다.
다른 직장이 정해진 것도 아니고, 공부를 할 계획도 없지만
저에게는 퇴사가 어쩔 수 없는 선택입니다.
회사에 들어오고나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참 많았습니다.
술들은 왜들 그렇게 드시는지, 결재는 왜 법인카드로 하시는지,
전부다 가기 싫다는 회식은 누가 좋아서 그렇게 하는 것인지,
정말 최선을 다해서 바쁘게 일을 하고
일과후에 자기 계발하면 될텐데,
왜 야근을 생각해놓고 천천히 일을 하는지,
실력이 먼저인지 인간관계가 먼저인지
이런 질문조차 이 회사에서는 왜 의미가 없어지는지..
상사라는 회사가 살아남으려면 도대체,
문화는 유연하고 개방적이고
창의와 혁신이 넘치고 수평적이어야 하며,
제도는 실력과 실적만을 평가하는
냉정한 평가 보상 제도를 가지고 있어야 하고,
사람들은 뒤쳐질까 나태해질까 두려워 미친 듯이 일을 하고,
공부를 하고,
술은 무슨 술인가 컨디션을 조절하면서
철저하게 자기관리를 하더라도,
도대체 이렇게 해도
5년 뒤에 내 자리가 어떻게 될지
10년 뒤에 이 회사가 어떻게 될지 고민에,
걱정에 잠을 설쳐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도대체 이 회사는 무얼 믿고 이렇게 천천히 변화하고 있는지
어떻게 이 회사가 돈을 벌고 유지가 되고 있는지
저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반면에 회사를 통해서 겨우 이해하게 된 것들도 많이 있습니다.
니부어의 집단 윤리 수준은
개인 윤리의 합보다 낮다는 명제도 이해하게 되었고,
막스 베버의 관료제 이론이 얼마나 위대한 이론인지도 깨닫게 되었고,
당연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던, 코웃음 치던
조직의 목표와 조직원의 목표는 일치하지 않는다는 대리인 이론을
정말 뼈저리게,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가장 실감나게 다가오게 된 이야기는, 냄비속 개구리의 비유입니다.
개구리를 냄비에 집어넣고 물을 서서히 끓이면
개구리는 적응하고, 변화한답시고, 체온을 서서히 올리며 유영하다가
어느 순간 삶아져서 배를 뒤집고 죽어버리게 됩니다.
냄비를 뛰쳐나가는 변혁이 필요한 시기에
그때 그때의 상황을 때우고 넘어가는 변화를 일삼으면서
스스로에게는 자신이 대단한 변혁을 하고 있는 것처럼
위안을 삼는다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인 것입니다.
사람이 제도를 만들고, 제도가 문화를 이루고,
문화가 사람을 지배합니다.
하지만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모두가 알고 있으니
변혁의 움직임이 있으려니,
어디에선가는 무언가가 벌어지고 있으려니
기대하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신문화 웨이브라는 문화 혁신 운동을 펼친다면서,
청바지 운동화 금지인 ‘노타이 데이’를 ‘캐쥬얼 데이’로 포장하고,
인사팀 자신이 정한 인사 규정상의 업무 시간이 뻔히 있을진데,
그것을 완전히 무시하고 사원과의 협의나 의견 수렴 과정 없이
업무 시간 이외의 시간에 대하여 특정 활동을 강요하는 그런,
신문화 데이같은 활동에 저는 좌절합니다.
변혁의 가장 위험한 적은 변화입니다.
100의 변혁이 필요한 시기에 30의 변화만 하고 넘어가면서
마치 100을 다하는 척 하는 것은
70을 포기하자는 것입니다.
우리 회사 미래의 70을 포기하자는 것입니다.
더욱 좌절하게 된 것은
정말 큰일이 나겠구나, 인사팀이 큰일을 저질렀구나
이거 사람들에게서 무슨 이야기가
나와도 나오겠구나 생각하고 있을 때에,
다들 이번 주에 어디가야할까 고민하고,
아무런 반발도 고민도 없이 그저 따라가는 것이었습니다.
월급쟁이 근성을 버려라, 월급쟁이 근성을 버려라 하시는데..
월급쟁이가 되어야 살아남을 수 밖에 없는 구조와 제도를 만들어놓고
어떻게 월급쟁이가 아니기를 기대한단 말입니까.
개념없이 천둥벌거숭이로
열정 하나만 믿고 회사에 들어온 사회 초년병도
1년만에 월급쟁이가 되어갑니다.
상사인이 되고 싶어 들어왔는데
회사원이 되어갑니다.
저는 음식점에 가면 인테리어나 메뉴보다는
종업원들의 분위기를 먼저 봅니다.
종업원들의 열정이 결국
퍼포먼스의 척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분당 서현역에 있는 베스킨라빈스에 가면
얼음판에 꾹꾹 눌러서 만드는 아이스크림이 있습니다.
주문할때부터 죽을 상입니다.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꾹꾹 누르고 있습니다.
힘들다는건 알겠습니다. 그냥 봐도 힘들어 보입니다.
내가 돈내고 사는것인데도
오히려 손님에게 이런건 왜 시켰냐는 눈치입니다.
정말 오래걸려서 아이스크림을 받아도,
미안한 기분도 없고 먹고싶은 기분도 아닙니다.
일본에 여행갔을때에 베스킨라빈스는 아닌 다른 아이스크림 체인에서
똑같은 종류의 아이스크림을 먹어보았습니다.
꾹꾹 누르다가 힘들 타이밍이 되면
누군가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모든 종업원이 따라서,
아이스크림을 미는 손도구로 얼음판을 치면서
율동을 하면서 신나게 노래를 부릅니다.
어린 손님들은 앞에 나와서 신이나 따라하기도 합니다.
왠지 즐겁습니다. 아이스크림도 맛있습니다.
같은 사람입니다.
같은 아이템입니다.
같은 조직이고, 같은 상황이고, 같은 시장입니다.
이런 생각으로 사무실에 들어오면 한숨부터 나옵니다.
하루하루 적응하고 변해가고,
그냥 그렇게 회사의 일하는 방식을 배워가는 제가 두렵습니다.
회사가 아직 변화를 위한 준비가 덜 된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준비를 기다리기에 시장은 너무나 냉정하지 않습니까.
어제 오늘 일이 아닌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내일에 반복되어져서는 안되는 일이지 않습니까.
조직이기에 어쩔 수 없는 문제인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말은, 정말, 최선을 다해서,
조직이 가진 모든 문제들을 고쳐보고자 최선의 최선을 다 한 이후에
정말 어쩔 수 없을때에야 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까.
많은 분들이 저의 이러한 생각을 들으시면
회사내 다른 조직으로 옮겨서 일을 해보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저는 어느 조직을 가던 매월 셋째주 금요일에
제가 명확하게,
저를 위해서나 회사에 대해서나 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활동에
웃으면서 동참할 생각도 없고
그때그때 핑계대며 빠져나갈 요령도 없습니다.
남아서 네가 한 번 바꾸어 보라고 하십니다.
하지만 저는 이 회사에 남아서
하루라도 더 저 자신을 지켜나갈 자신이 없습니다.
또한 지금 이 회사는 신입사원 한명보다
조그마한 충격이라도 필요한 시기입니다.
제 동기들은 제가 살면서 만나본 가장 우수한 인적 집단입니다.
제가 이런다고 달라질것 하나 있겠냐만은
제발 저를 붙잡고 도와주시겠다는 마음들을 모으셔서
제발
저의 동기들이 바꾸어 나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세요.
사랑해서 들어온 회사입니다.
지금부터 10년, 20년이 지난후에
저의 동기들이 저에게
너 그때 왜 나갔냐. 조금만 더 있었으면 정말 잘 되었을텐데.
말을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10년 후의 행복을 보장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오늘의 행복이라고 믿기에,
현재는 중요한 시간이 아니라,
유일한 순간이라고 믿기에
이 회사를 떠나고자 합니다.
2007년 5월 2일

대충 훑어본 것도 아니고, 여러 차례 천천히 읽어보았습니다만, 많은 분들이 평가하시는 ‘철없는 신입사원의 불평/불만’만으로 보이지는 않는 군요. 오히려 썩을 대로 썩어버린 어두운 기업문화의 단면을 제대로 지적하고 있는 글이라 생각됩니다. 정리가 잘 된 글이기에 화가 나서 막 갈겨 쓴 글이란 느낌도 들지 않는 군요. 사직서와 그의 행동 자체에 대해서는 왈가왈부 하지 않겠습니다. 그의 의견이며 그의 소신에 맞는 행동이었기에 제가 감히 평가하지 않으렵니다.

전 그의 용기를 높게 평가하고 싶습니다. 사직서라는 게 쓰기 쉽지 않거든요. 특히 차후의 취직을 고려하자면, 퇴사이유가 그의 발목을 어느정도는 붙잡게 될지도 모릅니다. 말을 잘하는 것이 중요하겠지만, 조직에 적응하지 못해서 퇴사하게 되었다는 판단을 받게 된다면 재취업이 굉장히 힘들어 지겠지요. 희생이 감수되어야 하는 환경에서 살아남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을 지도 모르는 일이거든요.

하지만 전 그의 결정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현세대에게 주어진 과제가 무엇인지, 현 기업문화의 실태와 문제점이 무엇인지, 그리고 앞으로의 기업문화가 어떤식으로 흘러가야 하는지를 짤막하게나마 다뤄보려 합니다. 개인적인 소견이 많이 들어간 글이 될지도 모르니 많은 이해 부탁드립니다.

수평적인 문화 vs. 수직적인 문화

선후배간의 관계, 직장 상사와의 관계사이에서 위와 아래가 나뉘어져 있는 것은 특정 기업에 한정된 것이 아니기에 애초에 기업문화라고 부르기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기업의 내부적인 운영과 관리자체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그리고 국가 자체의 문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거든요. 일례로 삼성 한국지사내의 환경은 북미나 유럽지사내의 환경과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듯, 각 나라에 맞는 환경을 갖춰야지 무작정 모두 다 통일 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거든요. 대부분의 외국 회사들이 수평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지사가 위치하고 있는 나라 자체의 문화가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야후 캐나다에서 자유롭게 회사원이 수평적인 관계를 유지하더라도, 야후 코리아 지사에서는 선후배관계 그리고 직장 상사에 대한 깍듯한 예우등이 자연스레 갖춰질 수 밖에 없습니다.

수평적인 문화가 좋다 또는 수직적인 문화가 좋다식의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기란 쉽지도 않고 거의 불가능합니다. 각기 나름대로의 장단점이 존재하는데다가, 앞서 말한 민족의 특수한 문화적 차이는 감히 무시 못할 부분입니다. 만약 지금 당장 한국 국내 지사에 수평적인 관계를 도입해본다고 해봅시다. 서로가 서로를 특별한 호칭없이 이름만으로 부르고, 연배가 높은 직장 동료를 스스럼없이 대할 수 있을까요? 이제 막 인턴으로 들어온 사원이 10년차 회사원을 이름으로 부른다고 생각하니 전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군요. 그러고 보면, 수직적인 문화가 이처럼 딱딱하고 회사내 업무 절차를 복잡하게 만든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단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선 수직적인 문화는 소속감을 제공하기에 적합합니다. 앞에서 든든히 끌어주는 선배가 있으며, 문제점이 생기면 일선에서 처리해주는 상사가 있으니 신뢰감이 자연스레 쌓이게 마련입니다. 맡은 역할이 어떠하든 책임감 부담에 있어서도 자신의 현위치에 따라 달라지기에 아주 큰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큰 부담없이 일을 처리할 수 있어요. 윗사람은 아랫사람이 예우를 다해주니 기분이 좋고, 아랫사람은 윗사람 밑에서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다져진 조언을 받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만약 수평적인 문화였다면, 윗사람 아랫사람의 구분이 사라지게 되고 모두가 동등한 입장에 서게 되어서, 아랫사람은 윗사람에게서 뭔가를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쉽사리 나질 않게 됩니다. 되려 윗사람을 낮게 보는 경우도 생깁니다. 솔직히 신입사원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능력은 다들 뛰어나거든요. 윗사람에 대한 공경심이 없었다면, 그들의 진정한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고 구세대에 뒤떨어짐을 핑계삼아 오히려 무시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할지도 모릅니다. 결국 자신이 선망하는 상대를 찾지 못한다면 현재의 직장은 소속감을 느끼기 보다는 단순히 자신의 경력을 쌓아나가는 징검다리로 전락할 수 밖에 없어요. 물론 수평적인 문화도 당연히 나름대로의 장점이 많습니다. 의견처리에 있어서 좀 더 민주적이기기도 하고, 동료사이의 스스럼 없는 관계 유지를 통해 좀 더 유연한 직장생활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수직적인 문화에서 한 회사원이 자신의 지위나 위치에 따라 크기가 다른 톱니바퀴 역할을 했었다면, 수평적인 문화에선 회사를 중심으로 많은 회사원들이 대부분 같은 크기의 톱니바퀴를 유지한체 돌아가게 됩니다. 제각기 장단점이 있기에 더이상 자세히 다루지는 않겠습니다. 아무래도 두 문화의 차이점만 따지자면 새로운 글로 작성해야 될지도 모르겠어요.

뭔가 좀 더 많이 써보고 싶은데, 생각 정리가 잘 되지 않는 군요. 아무래도 저도 아직은 사회 초년생이라 그런가 봅니다. 제목에서 밝힌 것 처럼, 아무래도 본 포스팅은 3부작 내지 4부작 정도로 나뉘어 질 것 같습니다. 생각이 정리되는 대로 조금씩 지속적으로 올릴께요.

2 Replies to “기업 문화: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 – 제 1부 수평적인 문화 vs. 수직적인 문화”

  1. 한국의 기업문화는 부조리가 너무 많습니다. 저는 그걸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미국에 왔구요. 저는 군대를 다녀와서 수직적 문화가 익숙함에도 불구하고 수평적 문화를 선호합니다. 스스로도 둘 사이에서 힘들 때가 많지만 제 선택은 역시 후자입니다. 앞으로 올리실 포스팅이 기대되는군요.

    1. 무엇을 원하냐에 많은 것이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수직적 문화는 승진을 해야 겠다고 마음 먹으면 자신의 입지가 상승되는 것을 직접 체감할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제가 코압으로 회사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 (예전 다른 포스팅에서도 밝혔지만) 제일 적응하기 힘들었던 것이 저보다 연배도 많이 높은 분들을 이름으로 불러야 했던 것이었어요. 한국에서 지내면서 윗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아무래도 많이 굳어져버린 상태였나 봅니다. 🙂

      제가 수평적 또는 수직적 문화사이에서 선택을 하라 한다면 어느 한쪽에 좀 더 마음이 간다거나 하진 않을 것 같아요. 회사가 마음에 든다면, 그리고 그 일이 마음에 든다면 결국엔 익숙해지기 나름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