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산다는 건 – 8. 크립 시트? 안써봤으면 말을 마세요

커닝/컨닝

커닝 또는 컨닝*하다는 말은 학교앞 문방구에서 눈깔사탕 사다 빨아먹을 적부터 들어봤을 겁니다. 나쁘게 말하면 공부 잘하는 애들 등쳐먹는 거고, 좋게 말하면 실력이죠. (뭥미?) 하늘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거늘, 난 평생 남의 것 베껴본 적 없다!는 분들에게도 전혀 돌 맞지 않을 글을 써보자고 합니다. 부정행위를 권장하는 (그런 냄새가 풍기는) 글을 쓰는 주제에 무슨 말이냐구요? Crib sheet 써보셨어요? 안써봤으면 말을 마세요.

*주: 커닝/컨닝은 콩글리시 또는 한국어식 영어라고 합니다. Cunning이란 단어에서 따온 이 말은, 주로 시험시의 부정행위를 지칭하는 경우에 많이 쓰이곤 하죠. cheat (치팅) 이란 표현이 더 적합할 겁니다. 출처: http://ko.wikipedia.org/wiki/%ED%95%9C%EA%B5%AD%EC%96%B4%EC%8B%9D_%EC%98%81%EC%96%B4
그래도 막상 맞는 표현법을 찾으려면 없네요. 커닝 페이퍼란 말이 좀 꺼려지긴 하지만, 나은 것을 찾기 전까진 그렇게 써야 겠습니다.

그나저나 크립 시트가 뭐냐구요? 사진을 도용하긴 좀 그렇고, (제가 따로 사진으로 찍기 전까지는) 플리커에 올려져 있는 사진들을 추천합니다. 🙂

http://www.flickr.com/photos/socalbavarian/2452897529/

크립 시트, 그 심적인 여유

우선 제가 여기서 말하는 크립 시트는 정당한 이유에서 만들어지는 시험 도우미를 말합니다. 굳이 시험 도우미라고 갖다 붙인 이유는, 아무리 공부를 해도 시험때만 되면 ‘흰 것은 종이요, 검은 것은 글자니’ 하시는 분들에게 심적인 여유를 갖게 해주기 때문이랍니다. 적어도 제겐 그랬어요. 암기과목에 약한 것은 아닌데, 무작정 외우는 건 진짜 싫어하거든요. 진짜 똑똑한 사람들은 ‘외우지 않고’ 이해한다고 하지만, 전 믿지 않았습니다. 이건 도대체가 달달 외우지 않고선 시험을 볼 수가 없거든요.

변명같아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런 종이가 없이는 시험 보기가 불안한 경우도 많았습니다. 죽어라 읽고 쓰고 외웠는데, 막상 시험장에 들어서면 머리가 백지장처럼 하얘지는 경우가 가끔 있거든요. 후우.. (/먼산) 그래서 저같은 경우엔 심적인 부담을 덜어주는 역할을 많이 했습니다. (라고 쓰고, 외우기 귀찮아서 라고 읽습니다)

커닝 페이퍼의 효율성

보통 공과계열의 과목들이 커닝 페이퍼를 허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수님들이 Letter size종이에 (캐나다는 용지는 미국식이라, A4 사이즈가 아니라 Letter 사이즈를 사용합니다) 앞뒤로 채울 수 있게끔 허락한답니다. 그래도 모든 과목이 다 허용하는 것은 아니에요. 종이에 빽빽이 채워오면 시험 문제를 낼게 없는 과목도 있기 때문에 허락하지 않는답니다. 솔직히 공부 하나도 안해도 지참한 종이에서 그대로 베껴쓰면 되니 무슨 평가가 되겠어요.

근데, 커닝 페이퍼가 있다고 해서 모든 시험이 수월하게 진행되는 것은 아니에요. 공식이 수십개가 되는 시험인 경우엔 자신의 눈앞에 공식 자체가 나열되어 있다고 한들, 무슨 공식을 써야하는지 모르면 말짱 꽝이거든요. 그래서 커닝 페이퍼를 허락하는 과목의 경우엔 시험이 아주 어렵거나 아니면 아주 쉽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운 좋게 종이에 적어놨던 내용이 시험에 나오면 아싸! 되는 거고, 그게 아니면 아 이 #%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시험 도중에 머리를 쥐어 짜는 사람이 보인다면, 커닝 페이퍼 만드는 데 소홀히 했나 보군 움하하하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커닝 페이퍼의 종류

커닝 페이퍼에도 종류가 있어요. 종이를 오색찬란한 색으로 한다고 종류가 달라지는 게 아니라, 무슨 내용을 적을 수 있냐는 게 다 다르답니다. 커닝 페이퍼라고 다 똑같은 게 아니에요. 닥치는 대로 전부 다 적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언제나 그런 게 아니거든요. 과목에 따라 다르고, 교수마다 또 다르답니다. 공식만 적을 수 있게, 직접 쓴 글만 허용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긴 것이 적발되면 종이를 빼앗기는 거죠. 시험지를 제출할때 커닝 페이퍼도 같이 제출해야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부정행위(!?)를 찾아내겠다는 것 같은데, 아직 나쁜 짓(?!)을 한적이 없어서 걸리면 어떻게 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딴청)

그래서 크게는 3종류로 나뉩니다. 1. 공식만 허용되는 경우, 2. 직접 쓴 글만 허용되는 경우, 3. 제한이 없는 경우.

공식만 허용되는 경우엔 예제를 포함할 수 없다는 제한이 있습니다. 공식만 나열해 두어선 자신이 쓸 줄을 모르면 아무 소용이 없게 되는 거죠. 결국 내용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면 공식만 갖고선 쪽박차기 쉽상입니다. 많은 경우에 시험지 자체에 이미 별도로 제공되는 페이지에 충분한 수의 공식이 나열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서, 공식만 허용되는 과목은 문제가 아주 어렵던지 아니면 아주 쉽게 됩니다. 문제 자체는 아주 어렵게 내진 않아요. 그럼 왜 어렵게 ‘느껴지냐구요’? 공부를 안했으면 어렵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지요.

직접 쓴 글만 허용되는 경우에는 가독성이 심하게 떨어진다는 위험성을 안고 있습니다. 거의 폭탄을 안고 시험을 보러 가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는데요. 막 내키는 대로 다 적었다가도, 자신이 쓴 글을 알아보지 못해서 좌절하는 경우가 종종 있거든요. 애시당초에 ‘계획적으로’ 공간 분할을 잘하는 것이 좋습니다. 저 같은 경우엔 세로로 4줄을 만들거나 3줄로 미리 나눠 놓고 시작합니다. (이건 기밀사항인데!)

제한이 없는 경우엔 조금은 널널한 편이에요. 따로 프린트를 해갈 수도 있고, 오리고 붙여서 너덜너덜하게 만들 수도 있어요. 커닝 페이퍼에 관해선 잊지 못할 사연이 참 많습니다. (웃음) 아무래도 제일 중요한 건 공간 활용입니다. 시험 범위를 잘 파악해서 챕터마다 중요도를 따져서, 하나의 챕터가 너무 공간을 많이 안 잡아 먹게 하는 게 중요해요. 신이 나서 막 만들어 나가다가 나중에 정작 중요한 부분을 쓸 공간이 남아 있지 않으면… 다시 만들어야 되거든요. (/먼산)

짧은 일화

이쯤에서 간단하게 제 경험을 말해볼까요? 듣기 싫어도 어쩔 수 없습니다. 너무 글을 길게 쓴 거 같아서 마무리를 지어야 되거든요. (누구맘대로!)

*일화를 좀 더 자세히 쓸까 하다가, 프라이버시도 존중해야 되니까, 조금 더 간략하게 줄였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학기말 고사를 앞두고 끙끙대던 시점이었습니다. 시험은 많고 (7개나 되니까!) 공부는 해야겠는데, 커닝 페이퍼를 만들려니 머리가 빠지겠는 걸요. 왠만한 과목들의 시험 범위가 처음 부터 끝인지라, 책 내용을 전부 요약하려니 한참 걸릴 게 분명하거든요. 결국 아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조금이나마 수월하게 만들어 보자 했습니다. 파트도 나누고 맡은 챕터마다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메모하기로 말이에요.

결과물은? 다섯 공대생의 땀과 열정이 담긴 ‘공작물’ 이었습니다. 예 단순한 종이가 아니라 ‘예술’이에요! 단순 복사를 통해 가독성을 높히고 동시에 축소 복사를 통한 공간 활용까지!

시험 당일 날, 깨알 같은 커닝 페이퍼를 들여다 보고 있는 다섯 한국인을 볼 수 있었습니다… 서로가 내가 맡은 부분은 완벽한데 왜 다른 부분에선 빠진 내용이 있냐는 불만섞인 중얼거림과 함께 말이죠.

11 Replies to “해외에서 산다는 건 – 8. 크립 시트? 안써봤으면 말을 마세요”

  1. 냐아아아아. 전 대학생활 내내 이렇게 종이에 써오라는건 달랑 stat class밖에 없엇어요. 그것도 결과적으론 별 도움 안되더라는 ㅡㅡ;;;

    1. 근데 없는 것보단 나은 게, 만들면서 공부가 되기도 하더라구요. 🙂
      문제는 괜시리 종이만 믿고 있다가 시험보러 가서는 뒷통수 맞는 경우가 가끔 있어요. -_-;

  2. 제 전공과목 중에도 저렇게 A4 한 장에 치팅 페이퍼 만들어오라는 교수님이 있어요. 그 분도 답안지와 치팅 페이퍼를 같이 걷으셔서 잘 정리한 페이퍼는 점수를 따로 주십니다.
    하지만 워낙 찌질하게 책 구석에 숨어있는 본 적도 없는 각주에서 시험 문제를 내기 때문에 아무리 열심히 긁어서 정리해도 소용이 없어요. ㅋㅋㅋ

    1. 오호 점수를 부가로 더 받게 되나 보군요. 저흰 그냥 걷기만 할 뿐, 따로 점수를 더 준다거나 한 일은 없었거든요.
      ㅋㅋㅋ 책에서 요점 정리를 한다는 것이 참 힘들어요. 아예 오픈북으로 시험보는 경우도 있는데, 시험 보는 내내 책 뒤져본다고 손가락에 쥐가 날 정도에요. -_-ㅋ

  3. 저도 열심히 만들어서 갔지만 막상 가선 잘 안썼던 기억이…ㅎㅎ

    잘 만드는 애들은 진짜 시험에 나오는거만 딱 골라서 쓰는거 보면 혀를 내두를 정도라니까요 @_@

  4. 이런 것도 있군요. 처음 들어봐요. ㅎㅎ
    저는 정말로 정리 잘할 자신 있는데. 학교 다닐때 거시기 페이퍼 만들면 80% 적중ㄹ…헉!! 안들은 걸로 하죠..

  5. ㅎㅎ 보내드리고 싶은 크립 시트 하나 있네요. 저 플리커에 있는 크립시트는 상대도 안됨 ㅋㅋㅋㅋㅋ

    제가 들은 과목은 아니지만 저희 학교에서 아주 유명한 컴싸 코스 cheat sheet입니다. Ruud님도 그쪽 분야시니 보면 놀라실 듯… 이거 때문에 돋보기 샀다는 놈도 있으니 -_-;;;

    메일 주소가 어떡게 되세요!!! pdf로 있으니 보내드릴게요!

    1. ㅋㅋㅋ 사실 크립 시트라면 이제는 보고 싶지도 않아요. orz
      돋보기 지참이 가능하다면 초마이크로로 (폰트 사이즈 6~7정도?) 크립시트를 만들면 어떨까… 아마 시험보는 2~3시간 눈 빠질 거 같군요 ㅋㅋㅋ
      다음에 진짜 보고 싶을 때 iF님 블로그에 글 남겨드릴께요 =0=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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