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주의자 그리고 나

개인적으로 전, 자신을 냉소주의자이면서 동시에 현실주의자라고 생각합니다. 냉소주의와 현실주의는 동음이의어는 아니기에 같이 분류하기 적절하진 않지만, 아주 연관이 없지는 않다고 믿습니다. 현실을 직시할 수 있기에 낙관주의자 또는 냉소주의자가 나올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다만, 제게 있어서 현실은 “직시”하기에 너무나도 어둡고 슬프기만 합니다.

낙관주의와 냉소주의는 둘 다 나름 살아가는 방식 중 하나이기에, 그리고 대부분은 타인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경우는 드물어서, 어떤 길을 선택해서 걷더라도 큰 문제가 될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도 그럴것이, 결국 사회라는 기계 장치에 있어서 맞물려 도는 톱니바퀴의 색깔이나 재료 자체는 중요하지 않잖아요. 세계는 하나라는 말이 달리 있는 게 아니라고 믿습니다. 물론 냉소주의와 낙관주의가 맞물려서 제대로 돌아가기가 쉽진 않겠으나, 본질이 분명하다면 어떻게든 그에 맞는 용도와 배치를 찾으면 되지 않겠어요. 다만 5개였던 톱니가 알고 보니 톱니가 3개인 것으로 판명된다면 그것보다 허탈한 느낌이 어디 있겠어요.

그렇습니다. 전, 위선주의가 바로 그런 허탈함을 낳는다고 생각합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 일까요. 지나친 낙관주의와 냉소주의가 불쾌감을 낳는다면, 위선주의는 사회 전체를 도태시키는 허탈감을 낳는다고 생각합니다. 1+1=2가 되기에 앞서 1, 0 또는 최악에는 마이너스에까지 이어지는 필요악 말입니다. 그리고 위선주의가 무서운 가장 큰 이유는 물들어버리기 너무 쉽다는 것에 있다고 믿습니다. 자신이 손가락질하던 그 모습이 결국엔 거울에 비친 스스로의 모습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겁니다.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마을 잔치를 위해서 주민들이 다 함께 힘을 모아 각자의 술을 한 곳에 모으기로 했으나, 큰 독에 모인 술은 술이 아니라 맹물이었다는, 나 하나쯤이야 하는 이기심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런 이기심은 이상주의라기보다는 위선주의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요? 누가 해주겠지 하는 강한 믿음에서 오기보단, 책임지겠다는 말뿐인 약속, 이런 위선적인 사고방식이 문제 아닐까요? 탐욕과 쾌락에 너무나도 취약한 인간이라 하지만, 다 변명일 뿐이고 자신의 마음가짐에 달렸다고 믿습니다. 네가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 식의 유머 아닌 유머는 웃어넘기는 것에 만족해야지, 실제로 현실이 되어선 안됩니다.

“나는 거짓말하는 아이가 제일 싫어요.”라고 부모님들이 종종 말씀하곤 하시죠? 비단 가정에서뿐만 아니라 유치원 그리고 학교에서도 선생님들이 똑같은 말씀을 하시곤 합니다. 위선도 거짓말과 크게 다를 바 없습니다. 말과 행동이 다르다면 그게 거짓말이며 그리고 위선이지 않겠습니까. 저도 위선, 위선주의 그리고 위선주의자가 모두 싫습니다. 남을 아예 무시하는 극악이 있다면, 악이면서 선 인체 가면을 쓰는 행동은 극악보다 더 싫어합니다. 극악은 그들만의 정의가 있지만, 위선은 정의마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제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라서 더욱더 서글프지만) 얼마 전 거울에 비친 일그러진 저 자신을 보았습니다. 이젠 당혹스럽기보다는 씁쓸하기만 합니다. 눈은 바깥으로 붙어 있기에 타인을 지적하는 것에만 익숙했던 제가, 어느새 손가락질하고 있던 상대가 제 모습을 닮아가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언행일치의 중요성은 귀가 따갑게 들어오지 않았습니까. 이제는 익숙해진 체 몸에 자연스레 배어 있을 법도 한데, 그리하지 않은 걸을 보면 아직도 전 많이 부족한 가 봅니다. 남에게 화를 내고 있을 때가 아니었음을, 정작 화를 내야 할 상대는 바로 저 자신이었는 데 말입니다.

말이 길어졌습니다. 가끔 꺼두는 것이 좋다고 했었죠? 자중하는 의미에서 그리고 반성의 시간을 갖는 의미에서 당분간 (별로 활동하는 사이트가 있지도 않지만) 블로그 외 모든 SNS 관련 활동을 중지합니다. 제가 없어도 세상은 돌아가는 법. 전 한동안 말을 아끼며, 자신에게 충실히 하는 시간을 가져야겠습니다. 행여라도 제가 필요하신 분은 본 블로그나 이메일로 저를 찾으시면 됩니다. 🙂

추-
글의 퇴고를 통해 문단 군데군데 수정을 했습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아직 부족한 점이 너무나도 많이 보이네요. 맨정신에 쓴 글인데도 글의 연결이 매끄럽지 않아서 감히 글을 공개한 것이 송구스럽습니다.

8 Replies to “위선주의자 그리고 나”

  1. 허허.. 당분간 조커의 낄낄거리는 웃음을 못듣게 된다니 아쉽구려. 남을 위해 자신을 낮출 줄 아는 배려.. quite a character 라 생각하오. 보면 다 자기 잘났다고 이미지 매이킹 하던데.. (Im kinda burnt out by them) 암턴 소진된 에너지 충전시켜 빨리 수면위로 올라와주기 바라오.. 편안한 자기의 모습으로. 그 전에 술이나 한 잔 해야하는데.. -_-;;;;

    1. 🙂 과찬이세요.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사실 고삐 풀린 망아지마냥 자신을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한 제가 우습기만합니다. 저 자신이 그런 캐릭터가 아니라는 것을 부정하고자함이 아니라, 뭐랄까 해를 바라보며 지평선을 향해 무작정 달려가다가 해가 지고나니 허무해지는 심정이랄까요. (웃음)

  2. 혹시 효민님도 요즘 갱년기? 🙂
    잠수 오래 하면요 심해에 사는 물고기마냥 납작해진데요! 어여 원기 회복하시고 바깥으로 나오세요!

    1. 하하. 아주 잠수는 아니니까요. 직업이 직업인만큼 아주 인터넷과 인연을 끊고 사는 것은 아니니 딱히 잠수라고 할 것도 없을 것 같습니다. 단순히 초심으로 돌아가려는 시도랄까요? 🙂

  3. 음.. 천천히 정독해서 읽었어요. 무슨 고민을 하셨는지, 어떤 마음으로 이 글을 쓰셨는지는 제가 감히 짐작할 수는 없지만 ; )
    어느 정도는, 어떤 말씀을 하고자 하시는지는 알 것 같아요. 그리고 효민님뿐 아니라 누구라도 늘 고민하고 계속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요. 🙂 혹시 너무 심하게 자책하거나 기운 빠져 계신 건 아니시죠? ㅎㅎ
    얼른 다시 뵙기를 바라면서.. 힘내세요! 🙂

    1. 제가 완벽주의자는 아닌데도 가끔 스스로를 심하게 채찍질하는 경우가 있어요. 남에게 손가락질하기 이전에 스스로를 돌아보는 일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흔히들 손가락질하는 손의 나머지 세(네) 손가락은 자신을 가리키고 있다고들 하잖아요.

      그나저나 정독까지 하실 글은 아닌데, 부끄럽습니다. 😉

    1. 글솜씨가 부족한지라 표현이 서툴고 앞뒤가 맞지 않아서, 글이 멀게 느껴지시나 봅니다. 어렵게 쓸려고 한 글이 아닌데, 괜히 머리 아프게 해드린게 아닌가 싶네요. 🙂

      아 그리고, (믿겨지지 않으시겠지만) 전 항상 같은 자리에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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