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4월 17일] 칠흑같은 어둠 속으로..

2004년 4월 17일 날짜: 밤은 여전히 차디차구나.

‘칠흑같이 어두운 밤 하늘,
묘하게 어울리는 그라디언트 빛깔의 밤하늘
한번즈음은 빠져봐도, 흠뻑 젖어봐도 좋을 테지…’
문 밖으로 나서는 발걸음이, 어제와는 다르게 그리 무겁게만 느껴지는 않는다.
별다른 상념없이 무작정 걸음을 옮긴다.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에 안주하지 않으며…
허황스런 미래를 바라지도 붙잡으려 하지도 않는다.’
상념이란 만들면 만들수록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법,
아무 생각 없이 시작된 발걸음이었지만,
곧 내 머리속은 여러 생각들로 가득차고 만다.
한켠에 묻어두었던 글들을 꺼내보던 생각이 든다.
이제는 아득한 옛날 같이 느껴지는 예전 일들,
그동안 꺼내선 쉽게 되새겨볼 용기가 없었던 것은
그 당시 열정과 감성을 다시금 느껴보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제는 실망감과 후회감의 복합적인 감정이 나를 흔들어 놓는 것을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단순하게 특별하지 않은 그런 일들이었는데,
나 자신이 너무나도 많은 의미를 부여하려 하진 않았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차마 지우지도 못하는 예전 기억들이 고스란히 저장되어 있지만,
차마 다시 읽어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쉽게 그들을 지워버릴 용기 역시 생기지 않는다.
이미 반은 건너 버린 외나무 다리 위에서,
나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연인들의 스킨쉽이 부러운 게 아니다,
다만 그들만의 공감대 형성이 부러울 다름이지…’
서로를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일까.
내 손을 잡을 수 있는 상대는 또는 내가 손을 잡아 줄 수 있는 상대는
이 지구내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이 될 수 있겠지만,
나와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기에.
아마 나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난 영원히 그/그녀를 잃고 싶지 않을 것이다.

‘시시각각 흘러가는 시간과 변해가는 자연속에서,
매 시간을 반복되는 일상으로 치부해 버리는 행동은,
인간들의 배부른 생각이지 않을까.’
늘 보던 수양 버들…
아마 캠퍼스내 나무중에서 내가 가장 아끼는 나무이지 않을까 싶다.
누구의 손이든 따스히 감싸고 쓸어 잡아줄 듯한 가지들은,
매번 다르게 느껴지고 보여진다.
어제와는 다르게 어둑해진 밤하늘이 왠지 모르게,
묘하게도 늘어뜨려진 가지들과 조화를 이룬다.
좀 더 은은한 느낌이랄까, 나 자신만의 느낌일지도 모르지만,
뭐 어떤가. 나만의 의미를 부여하는 데 의의가 있지 않을까.

‘눈에 비춰진 광경은 더이상 진실만이 아니게 된다.
사람 각 개개인의 사고에 의해 재해석되어 보여지기 때문이다.’
논리적이다, 비논리적이다. 논리의 기준은 어디서 세워지는 것일까.
단지 많은 이가 공감하기에 논리가 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면, 현실적이기에 논리가 되는 것일까.
말이 되지 않는다, 라는 표현또한 애매하지 않는가.
나는 단지 생각을 재조명하길 좋아할 뿐인데,
그런 내가 별스럽다 느낀다면, 뭐 나야 무슨 말을 하겠나,
그것이 내 삶의 방식인걸.

‘사람마다 제각각 저들만의 삶의 방식이 있고,
방어 도구라는 것이 있게 마련이다.
결코 그 방식을 탓할 수도, 욕할 수도 없다.
당신 또한 자신만의 방식이 있지 않은가.’
난 세상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단순히, 긍정적으로 생각하지만 않을 뿐이지.

단어란건 참으로 우스운 것이다.
생각을 제한하고, 재조명하게 만들고,
가끔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결과를 낳기도 한다.
굳어버린 사고 속에서,
어둠의 나락속으로 빠져드는 현실 앞에 결국 두 무릎꿇고선
끝끝내 묻혀진 나 자신을 끌어올리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