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4월 24일] 간만의 나들이

2004년 4월 24일 날씨: 맑고도 맑도다 하늘은…

‘여름은 누구를 위한 휴식인가. 지금으로선 그 무엇도 편치 않을 거 같은데,
육체의 안식은 시작되었건만, 마음만은 여전히 끝없는 길을 달려가고 있진 않는지,
정녕 진정한 안식의 시작은 숨이 다하는 날부터 인가.’
따뜻한 햇살아래에 발걸음을 옮긴다.
오늘따라 유난히도 그리 가볍지 않게 느껴지는 몸뚱아리,
다친 골반 탓일려나, 그렇지 않으면 개운치만도 않은 마음의 부담감 때문인가.
공기는 상쾌하고 햇살은 따스하여 육체만은 자유를 만끽하지만,
마음만은 온갖 번뇌의 사슬에 얽혀 바닥을 헤매이는 듯하다.

‘인간은 책을 통해 간접 경험을 얻고 그 간접 경험을 바탕으로 한 삶의 방식에서
다시금 직접적으로 세상을 살아간다.’
이미 전자파도의 물결에 휩쓸려 버린 나일까, 책 읽는 양이 예전만 못하다.
간접경험의 보고에 싫증난 것일까, 아니면 나도 더이상 순수하지만은 않기 때문일까.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배우는 방식에 이미 익숙해져버린 나,
하지만 무엇 하나에도 쉽게 만족하지 못하는 나인데,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과연 나는 무엇을 배우려 하는 가.

‘심신이 즐길 수 없는 여행은 더이상 여행이 아니다.
단순한 현실에서의 도피 행각일 뿐일테지.’
인생은 위치를 알 수 없는 종착역을 향해 가는 기차와도 같지 않을까.
평생 현실이란 좌석에 묶여 편도행 차표를 손에 쥔채
언제나 즐겁지만도 않을 그 여행 도중, 나는 무엇에서 벗어나려 하는 것일까.
현실도피란 말을 즐기지만, 그 현실도피도 결국에는 현실 속에서 일어나지 않는 가.
상상 또한 현실에서 할 수 밖에 없는 노릇이기에…

‘왜 억지로 생각의 시작을 맺으려 하며,
왜 억지로 생각의 마침표를 찍으려 하는 가.
생각 없는 나를, 고민 하지 않는 나를 상상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진 않을까.’
언제부터일까, 세상 살아가는 나만의 처세술이 바뀌기 시작했다.
아니 이미 예전부터 정해져 있었을 까.
옳다고 생각되는 건 행해져야 했고, 나 자신에게 스스로가 당당해지기 위해
많은 일을 떳떳하게 처리해 왔다.
뽑은 칼로는 무엇이든 베어야만 했고, 언제나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도록 노력했다.
그러기 위해선, 언제나 고민해야만 했고, 상대를 배려할 줄 알아야 했으며
나에게 피해가 오는 것쯤은 감수할 수 있어야 했다.
더욱이 자신의 감정에 대해서는 철저히 냉정하게 대했다.

세상을 너무 힘들게 살아가는 것일까. 즐기며 살아야 하진 않을련지.
아무도 찾지 않을 진흙탕 속에서 행여나 누구에게 튀지나 않을까 온몸으로 감싸고 있는 듯,
오늘도 난, 닥쳐 오지 않을 시련을 미리 걱정하고 있진 않을까.
더럽혀진 이 몸을 구제해서 따스히 감싸줄 그런 사람은 없을련지.
온갖 미련과 시련을 일순간에 씻어 버리듯 잊어 버릴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