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5월 7일] 아. 그대는 망상가라

2004년 5월 7일 날씨: 서늘한 날씨는 나를 산책가로 만들고

맑고 높은 하늘은 결국 나를 바깥으로 끌어내고야 말았다.
기분 좋은 선선한 바람은 자연스레 내 발걸음을 옮기게 하였는데,
금빛 물결, 그렇다 금빛 호숫물은 내 시선을 매혹시키기에 충분했으며
유난히도 소란스런 물결은 나의 두 귀를 사로 잡기에 충분했다.
간혹 지저귀는 새소리에 나도 모르게 시선을 여기 저기 돌리기에 바빴고,
드넓은 하늘과 호수의 만남은 언제나 내 마음을 편안케 한다.
덕분에 내 마음은 더욱더 자연을 동경하게 되었다.

약간 들뜬 기분에서 일까, 주위 사물들이 좀 더 정확히 보인다.
그래서인지, 평소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던,
(정확하게는 예전에도 그런 모양이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무가 눈에 띄었다.
비스듬하게 뽑혀선, 반죽은 나무가
(신기하게도 죽은 것 같은 나무에 여전히 푸른 잎이 돋아 있으니, 살아 있는 건 분명하지 않을까)
거의 쓰러질 듯 전선에 걸친 채 ‘누워’ 있으니,
보는 나로 하여금 안쓰럽게 하였다.
947… Lake Road North 였지 아마, 하하 947 이라는 숫자는
끝까지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내내 되새겼었다.
왠지 모르게 그 비스듬한 나무가 중요한 일처럼 다가 왔기에,
결코 쉽게 넘겨선 안된다고 생각했었다.
아마 시청이든 어디든 전화를 해야 하진 않을까.
내일 모레는 주말인데, 응답은 없을 텐데…
고민은 또 시간 속에 파묻혀 진다.

역시 나를 속이지 않았다.
가히 꿈의 장소라 불릴 만한 그 곳은 이미 일전에도 와봤듯이,
마음 안정하기엔 그만인 최적의 장소였다.
의자에 걸터 앉아선 책을 읽자니,
방금까지도 잊고 있었던, 쌀쌀한 바람이 온 몸을 엄습한다.
차마 책장을 넘기지 못하고, 결국 온몸으로 바람을 맞으며 잠시나마 상념에 젖어보려 했다.
결국 호숫가를 바라 보고 서선, 금빛 햇살 아래 눈을 감은 체 감상에 젖어 보았다.
별다른 생각 없이 아니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했던 것만은 확실했다.
그렇게 얼마동안일까 서있는 동안 머리가 맑아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탁 트인 호수는 내 마음을 담을 만 했고, 높은 하늘은 내 욕망이 닿기에 충분한 높이 였으니.

돌아오는 길, 문득 생각이 든다.
왼쪽 귀로 듣는 세상은 오른쪽 귀로 듣는 세상과 다르다.
이어지는 상념들…
당연하지 않은가, ‘왼쪽’ 귀는 ‘오른쪽’ 귀와 엄연히 다르기에,
세상이 다르게 들리는 것도 당연하지 않을까.
마치 머릿속에서 토론회라도 벌어진 듯, 양쪽으로 갈라서서 서로의 의견을 공방하기에 바빠진다.
뇌세포가 두갈래로 나뉘어져 버린걸까?
단순히 나의 인격이 나뉘어 진걸까.
신기하면서도 전혀 새삼스럽지 않은 아주 친숙한 분위기의 토론은
나를 한층 더 깊숙히 정신 세계로 빠져 들게 한다.

어쩌다 나왔을까, 이름이 불리워 졌을 때의 대답.
어떤 식으로 대답하느냐, 참으로 우습지도 않은 토론 주제다.
‘왜 부르냐’ 식의 반문식 대답이냐,
그렇지 아니하면 ‘그래’ 식의 응답형 대답이냐.
단순히 인간도 언제나 궁금증을 떠안고 사는 존재이지 않은가.
그렇기에 자신의 이름이 불려졌을 땐, 반문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 생각한다.
물론 상당히 불손하게 들릴지도 모르고, 약간은 부정적인 대답 방식일지 모르나,
자연스러운 것인데, 어찌 쉽게 바꾸랴.
한편으로는, 불리워 지는 대로 응답하는 것도 참으로 바른 일이지 않을 수가 없다.
자신의 이름이 불리워 지는 대는 당연히 이유가 있지 않을까.
응답하고 마땅히 상대의 대답을 기다리는 게 예의이진 않을까.
‘확실히’ 결론 없는 토론, 우습게도 언제나 같은 결말이지만, 이지만,
이런 식으로라도 상념에 젖어 볼 수 있다는 게,
내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걸 느끼게 해줌에는 틀림이 없다.
물론 가장 아쉬운 점은… 곧내 잊혀 버릴 망상들로 가득차 있다는 것을 제외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