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5월 23일] 비로 쌓아가는 환상의 성

2004년 5월 23일 날씨: 연휴의 시작은 비와 함께

비가 온다… 빗방울 그 자체에서 매력을 찾으라면 힘든 일일지도 모르지만,
모든 것이 어우러진 비가 오는 장면에서 매력을 찾으라면 의외로 낭만적일지도.
비는 나에게 많은 것을 안겨주진 않았다.
어릴적 빗속에서 뛰어 놀던 추억이나,
진흙탕이 되어버린 땅에 물길을 만들어가며 그렸던 추억이라면야
언제나 회상하기 즐거운 일이긴 하지만,
이미 잉크 자국 마른지도 한참은 더 지나버린 나에겐
그들은 어릴적의 추억일 뿐…

나에겐 언제나 단지 비에 대한 환상만 그득할 뿐,
마땅찮은 추억이라곤 그리 아니 하나도 없는 듯 하다.
그래서인지, 언제나 비가 오는 날이면,
추억을 회상하기 보다, 끝없이 솟아오르는 환상의 성만 쌓아 올릴 뿐이다.
문득 시상이 떠오를 법도 한데…
좀 더 상념에 묻혀 있고 싶은 생각에 펜을 잡고 싶은 엄두는 나지 않는다.
마린블루스에서 나온 한 장면이 생각난다.

“사실 난… 비오는 날이 슬펐던 기억은 별로 없어…
 오히려… 빗속에서 만든 예쁜 추억이 훨씬 더 많은데…
 근데 왜… 가슴이 아픈걸까나…”

나는 비록 그의 감정을 공감할 수는 없으나,
왠지 모르게 이해할 수는 있을 것 같다.
함께 쌓아올린 커다란 환상의 성에서,
이제는 혼자서 공허한 성을 지키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을 때,
얼마나 가슴 아플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