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6월 7일] 회상에 젖을 때면

2004년 6월 7일 날씨: 후덥지끈

낮 내내 가게를 지키며 책 읽었다, 팔굽혀펴기 했다.
혼자서 열올리며 허덕거렸다.
여름이 되면 겨울이 그립게 되고,
겨울이 되면 다시금 여름이 그립게 되는 심리는 어쩔 수가 없나 보다.

요즘 읽는 책이 뭔고 하니 (그래봤자 읽기 시작한지 이틀정도 밖에 되지 않은 듯 싶지만)
다빈치 코드 – 얼마전 다 읽은 – 를 쓴 작가가 쓴 글인데,
그가 밝히길 다빈치 코드의 전편이라 하였다.
이미 그의 실력은 톡톡히 읽은 바, ‘Angels & Demons’ 이라는 그의 책 또한 가히 놀라울 정도로 흥미로웠고,
한마디로 대단했다.
다만 아쉬운게 있다면, 책 자체 보다는 나 자신에 대한 것인데,
책을 읽으며 나는 세세한 내용 하나 하나를 다 따지기 보다,
전체적인 흐름을 즐기며 읽는 편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책에서 나오는 명칭이나 등장 인물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한데,
심지어는 작가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내 실생활도 그리하지 않은가 싶다.
일분 일초 한시각을 살아가면서 머릿속에 담아두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스쳐지나갔던 사람들은 누구였는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었는지.
이제껏 살아오면서 내 가슴에 담아두었던 시간은 과연 얼마나 될련지…

이메일을 확인하며, 오늘의 유머를 하나하나 읽다 문득 눈에 들어오는 글이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맨하단에 위치한 소위 감동적인 이야기 인데,
간략하게 말하자면 한 여성이 직접 자신의 경험을 적은 가출에 관련된 10대들의 방황기 였다.
가족의 중요성을 깨우쳐 주는 좋은 글이었으며,
동시에 과거를 회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난 과거에, 아직 초등학생이었었지 아마…
아련히 남아있는 기억이어서 정확한 시기는 생각 나지 않는다.
물론 시기가 중요한 것이 아닌 것은, 단 한번의 생각으로 또는 한순간의 고민으로 끝난 것은 아니었으니.
종종 자살이라는 단어를 마음에 품고 머릿속에 떠올렸으며,
가끔은 엄마한테도 말을 한적이 없지는 않았던 것 같다.
엄마의 말인즉, 자살을 할려고 마음을 먹고 실제로 그것을 행하는 만큼 용기 있는 사람도 없다고 했으며,
진심으로 자살하려고 마음 먹은 이는 그 사실을 밖으로 내뱉지 않는다 하였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나는 현실도피를 희망하였던 것이 아닐까.
실제로 아파트 5층에서 떨어졌을 때 과연 어떻게 될련지 상상해 보곤 했었으며,
비오는 날이면 울적해져선 괜시리 발코니에서 창 밖을 내다 본 적도 있곤 했다.
발코니라고 해봤자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베란다’ 형식이니 쉽게 떨어질 리도 만무했었지만.

나는 유년기를 유쾌하게 보내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물론 나름대로 즐겁고 행복한 시간도 있었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긴장과 우울에 시달리기도 했고,
좌절과 공포를 맛봐야 한 적도 적잖아 있었기에.
내가 생각해도 기상천외한 일을 다 겪은 거 같다.
한국에서 발을 뗀 그 날까지…
과장 섞어서 한숨의 나날이지 않았을까.
알게 모르게 어린 나날의 고통스러웠던 시간들이 나를 변하게 만들었을까.
유일하게 벗이 될 수 있었던 건 책이 아니었을까.
그때는 나보다 5살이나 어린 동생에게 부담을 지우기 보다,
혼자서 고통스러워하는 게 나을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까.

지금와서 다시금 돌이켜 보면,
그런 시기를 겪었기에 지금의 나 자신이 존재할 수 있었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이중적인 성격이 적잖아 없지는 않지만,
고통 받는 엄마를 너무도 많이 봤기에,
남이 겪을 고통이라면 차라리 내가 받는 것이 마음 편하다는 게 내 신조라면 신조이니.
본능을 꾹 누르는 내 인격이 가끔은 놀라울 때도 있지만서도 후후.
하지만 나도 인간인 건 어쩔 수가 없는 것이,
타인을 증오하고 시기하며 비판하며 살아간다.
이 이중적인 성격이 참으로도 부끄럽고 한스럽지만,
어쩌겠나, 이 역시 나 자신의 일부인 것을,
모두다 안고 살아가야만 하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