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 위로 비쳐진 무감각한 나

요즘은 TV 뉴스를 통해서 인생의 희노애락을 모두 경험할 수 있습니다. 뉴스라는 게 자신이 원하는 내용만 들을 수 있는 게 아니라서 기분이 좋건 나쁘건 다 공평하게 들어야 하거든요. 덕분에 뉴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아나운서는 표정관리뿐만이 아니라 목소리톤에도 엄청 신경을 써야 합니다. 슬픈 내용을 보도할 때는 낮게 슬픈 표정으로, 그리고 기분 좋은 내용을 보도할때는 화기애애한 모습으로 진행해야지, 자연재해로 물난리가 난 상황에서 씨익 웃으면서 진행할 수는 없잖습니까. 아무래도 잔뼈가 굵은 아나운서들은 가뿐하게 진행해나가겠죠. 언제 웃어야 하는 지, 언제 슬퍼해야 하는 지 말입니다.

덕분에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TV속 세상은 현실이면서도 동시에 엄청 멀리 떨어져 있는 딴세상 같습니다. 울다가 웃다가 180도 다른 내용이 시시각각 보도되는 게 TV 뉴스인지라, 한참을 들여다 보고 있으면 내가 웃어야 하는 지 울어야 하는 지 모를때도 있습니다. 전쟁중에 수많은 사상자가 났다는 내용을 보다가도 어느새 침통한 분위기는 온데간데 없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넘어가는 뉴스를 보자면 화가 안날래야 안날 수가 없군요. 이런 %# 사람이 죽었다는데, 연예계 이야기로 웃음이 나오게 생겼냐는 겁니다.

감정을 무디게 하는 요인은 극과 극을 달리는 내용이 연속적으로 보도된다는 것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시시각각 지속적으로 벌어지는 많은 사건들을 모두 보도하기 위해서 하나의 내용을 오래 다루지 않게 되다보니, 폭풍처럼 몰아치는 뉴스 보도속에서 30초동안 울다가 30초뒤에는 웃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너무나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비단 TV속 뉴스 뿐만이 아니겠지요. 불과 몇분 사이에 수십개의 새로운 기사들이 올라오는 곳이 포탈 사이트들인데, 쏟아지는 기사들 속에서 이를 읽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발견될 무덤덤한 표정들이 눈에 선합니다.

역지사지라 하지만, 타인의 감정과 상황을 100% 공감한다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입니다. 그렇지만 감정의 메마름을 더더욱 부채질하는 요즘 미디어 매체들을 생각하면 한숨밖에 안나오네요. 단순히 제가 너무 예민한 걸까요, 아니면 너무 메마른 걸까요?

2 Replies to “화면 위로 비쳐진 무감각한 나”

    1. 하루에 셀 수 없이 발생하는 마음에 안드는 사건들 중 하나일 뿐이죠.. 언제 죽냐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죽냐가 문제라고 생각하다 보니, 시니컬한 생각을 자주 하게 됩니다.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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